오피니언 사설

식품·의약 정책에 대한 불신 씻어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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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렇게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해도 되는가.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판매금지된 페닐프로판올아민(PPA) 함유 감기약 167종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된 전말을 알게 된 국민은 기가 막힐 뿐이다. 식의약청이 제약회사의 이익을 챙겨주는 기관인지, 국민 보건을 지키는 기관인지 물어야 할 지경이다.

인명과 직결된 의약품에 대한 위험성은 감지된 즉시 공개하고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식의약청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00년 PPA 함유 감기약을 판매금지시킨 지 한참 뒤인 2002년에야 서울대연구팀에 역학조사를 맡겼다. 연구보고서가 뇌졸중 증가 위험성을 언급하자 지난달 31일에야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제 와서 온갖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전 세계가 권위를 인정하는 FDA의 경고를 무시하고 4년간이나 시간을 끈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식의약청이 직무를 유기하는 동안 PPA 함유 감기약은 연평균 2580만건이나 처방됐고, 이를 복용한 노인환자의 뇌졸중 사례도 보고됐다. 식의약청이 위험성이 있다는 서울대 연구팀의 최종보고서를 제출받은 뒤에도 일부 제약회사에 PPA 함유 약의 품목허가를 내준 것은 도덕적 해이의 극치다. 이러니 제약회사의 로비와 유착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소비자단체는 위험성분이 포함돼 외국에서 금지된 의약품 가운데 국내에서 유통되는 것이 수십종이라고 한다. 유해 정도와 유통 실태가 즉각 공개되고 판매금지 등 합당한 조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국민은 모르모트가 아니다. '위험성은 있지만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괜찮다'는 식의 위험천만한 사고는 추방돼야 한다. 이런 일이 적당히 용서받고 재발한다면 우리 사회는 퇴행과 후진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감기약도 마음 놓고 못 먹는 나라에 살 수는 없다. 보건복지부의 감사로 적당히 마무리할 일이 아니다. 감사원이 나서 실태를 파헤치고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한다. 식품.의약정책에 대한 국민의 총체적 불신을 씻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