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 BTC인수]미국 월가 진출위한 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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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4월 도이체방크의 롤프 브로이어 회장 (61) 은 해외에 나가 있는 간부 3백명을 뮌헨으로 소환, "치열한 국제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이체방크가 앞으로 진정한 글로벌 은행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 역설했다.

미국 유력은행인 뱅커스 트러스트를 인수한다는 30일의 공식 발표는 브로이어 회장의 이러한 변신전략의 구체적인 첫 산물이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러시아 금융시장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러시아 경제가 사실상 파탄상태에 이름에 따라 지난 3분기에만 4억8천만달러의 손실을 입고 이번에 도이체방크에 인수되는 운명을 맞았다.

뱅커스 트러스트의 프랭크 뉴먼 회장은 도이체 방크의 새 경영진에 합류해 국제영업분야의 최고책임자로 일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인수를 통해 브로이어 회장은 그동안 노려왔던 미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97년 5월 도이체방크 회장에 오른 그는 취임이래 꾸준히 국제금융분야를 강화하며 세계 금융의 본산인 월스트리트 진출을 강조했다.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미 투자은행 JP 모건과 리먼 브러더스 인수도 추진했었다.

지난 56년 도이체방크에 수습 사원으로 입사, 85년 임원에 오르며 평생 한 직장에서 잔뼈가 굵은 브로이어는 독일 증시 현대화 계획과 최근 유럽 단일증시 설립으로 이어지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 런던 증시 통합작업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해 '미스터 금융시장' 으로 불리는 독일의 대표적 금융인이다.

교섭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영어와 불어에도 능통, 국제적 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 영업망을 갖추고 있는 도이체 방크는 유럽 금융권의 선두주자. 그러나 최근 골드먼 삭스 등 미국 투자은행의 유럽 진출로 위기감을 느껴왔으며 특히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 은행들에게 밀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욱이 독일의 간판 기업인 다임러 벤츠의 지분을 22%나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인수협상 주도권을 미국의 골드먼 삭스에 빼앗기면서 위기감은 고조됐다.

전문가들은 미국계 은행들은 '국가' 에 대한 고려없이 '최적의 사업' 을 선택하지만 도이체방크 등 유럽은행은 '국가적 이익' 을 염두에 둘 뿐 아니라 관료적이어서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뱅커스 트러스트 인수를 통해 도이체 방크가 하루 아침에 유럽적 관행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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