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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총리 규슈대 강연 이모저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30일 일본 규슈 (九州) 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김종필 (金鍾泌) 총리는 학위 수여에 앞서 일본말로 강연을 했다.

金총리가 그간 주장한 것들이 한결같이 일본인의 관심을 끌었는지 규슈대 대 강당 1천5백여 좌석은 꽉 찼고 강연은 청중의 박수 속에 끝났다.

94년 역사의 규슈대가 명예박사학위를 준 것은 이번이 다섯번째며, 이번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은 20년만의 일이다.

◇ 강연내용 = 金총리는 이날 강연에서 일본인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던 그간의 주장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金총리는 각료간담회에서 제안했던 아시아통화기금 (AMF) 의 필요성을 재강조하면서 '일본역할론' 까지 주창했다.

일본이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아시아의 리더' 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총리는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 라고 전제한 뒤 유럽의 경제통합과 같은 지역공동체가 아시아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통합의 중심을 일본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다음 세기에서는 세계사의 능동적 주체가 돼야 한다는 논리다.

金총리는 또 한.일관계에서 항상 민감한 문제였던 과거사에 대해서도 아주 긍정적인 해석을 내렸다.

즉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 가 아니라 '가깝고도 긴밀한 나라' 라는 주장이다.

金총리는 양국 사이에서 불행했던 시기는 임진왜란 7년과 일본제국주의의 강제점령기인 식민시대 36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1천5백년이 넘는 한.일 관계사에서 이 시기는 극히 예외적인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金총리는 자신이 주도했던 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회고하며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8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제공하기로 결단을 내렸던 일본 지도자들에게 아직도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고 피력했다.

金총리는 끝으로 청중인 대학생들에게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처럼 역사의 족쇄로 인한 선입견 없이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며 "한.일 양국의 진정한 동반자관계를 열기 위해 노력해달라" 고 당부했다.

◇ 일본측 반응 = 강연내용이나 형식 모두가 일본인들의 호감을 자아냈다.

대학 관계자나 학생들 모두 "좋은 인상을 받았다" 며 호평했다.

강연에 앞서 규슈대 오케스트라의 간단한 연주가 있었다.

규슈대 스기오카 요이치 (杉岡洋一) 총장은 인사말에서 "金총리가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의 가슴에 호소하기 위해 일본어로 강연하기로 결정한 것에 감격했으며, 감사드린다" 며 金총리를 소개. 총리는 40분간 준비된 원고를 보며 강연했는데, 특히 일본의 역할론과 대학생들에게 미래의 한.일협력을 당부하는 대목에선 목소리를 높였다.

강연을 듣고난 모데기 야스도시 (茂木康俊.20.법학부) 는 "우선 일본어를 너무 잘해 놀랐다" 면서 "AMF나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목은 매우 현실적인 대안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좋은 명예동문을 만나 반갑다" 고 말했다.

후쿠오카 =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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