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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북핵 포기 시 주민 삶 획기적 향상시킬 국제협력 실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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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이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북핵 포기 시 경제 발전과 주민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 협력을 실행할 것이다. 남북 경제공동체를 위한 고위급회의를 설치하고 경제·교육·인프라 등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 남북 간 재래식 무기의 감축도 논의해야 한다.”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지만 북핵 폐기가 전제돼야 한다는 대북 원칙은 변함없이 유지하겠다는 단호한 메시지가 담긴 언급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축사 마지막 대목에서 “북한 당국에 간곡히 촉구한다”며 대북 문제에 대해 비교적 부드러운 톤으로 말문을 열었다. 핵 포기 결단이 있어야 한다던 과거 발언에서 “그런(핵 포기) 결심을 보여준다면”으로 뉘앙스가 바뀐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또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국제협력 프로그램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살아있는 동안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바람직하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에 이어 이 대통령이 남북 화해·협력의 큰 그림을 경축사에 담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 개방 3000’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가 풀려난 뒤 8·15 경축사에 유화적인 제안이 담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은 빗나갔다. 이 대통령은 유씨 석방에 대해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참모들은 전했다. 부당 억류됐던 근로자를 풀어준 걸 놓고 보상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으로선 실망스러운 대목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재래식 무기 감축’을 제안한 것은 대량살상무기(WMD)인 핵·미사일 못지않게 안보위협 요소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DMZ) 주변에 밀집 배치된 화력·병력을 줄여 평화적 이용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군비를 감축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경제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의 호응이다. 북한은 1950년대 이후 정치공세 차원의 군축 주장을 폈을 뿐 실질적 논의는 피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군축 논의와 군사신뢰 구축은 북한이 가장 꺼린 의제였다. 경축사 하루 만에 북한 군부는 17일 시작할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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