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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확보 곤란 … 나라 밖 유권자 처벌 잘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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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이날 미국 교민 A씨는 교민들을 투표소가 설치된 총영사관까지 자신의 승합차로 실어날랐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이들이 “공관까지 거리가 멀다”며 투표를 주저하자 차량을 제공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후보 지지자는 공직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A씨를 한국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 검찰이 “현지 대사관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으나 A씨는 “죄가 되는지 몰랐다”며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고발인·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어렵게 증거를 확보한 검찰은 A씨에게 “조사 없이도 기소할 수 있다”며 다시 한번 자진 출석을 종용했다. 그러나 A씨는 “수사는 물론이고 재판에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연락을 끊었다.

재외국민의 대통령 선거가 3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A씨와 같은 선거사범 처리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가 크지만 지지 후보의 당선을 위한 금품 살포 등 부정선거운동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3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도 재외국민 선거범죄 문제에 관한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이날 서울대 이효원(법학) 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재외국민 선거범죄와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벌칙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와 그 범위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수사-재판-형 집행 등 단계마다 장애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수사 착수는 고소·고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효대 공보관은 “외국은 치외법권 지역이라 위반행위가 발생해도 증거를 채집하는 등의 직접적인 조치를 할 수 없어 단속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소 후에는 피고인의 국내 법정 출석을 기대하기 어려워 대부분 궐석재판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을 진행해 형이 확정됐을 때도 피고인 신병이 확보되지 않아 형 집행이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법무부가 TF팀을 구성해 입법에 나섬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무부가 대책으로 제시한 영사 조사 제도는 국회 비준을 거친 빈 협약에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원활한 수사를 위해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선거권·피선거권 제한이나 여권 무효화 등 ‘간접 강제 수단’에 대해선 논란이 예상된다. 유죄판결 확정 전에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희 TF팀장은 “현행 법 체제 아래에서는 (재외국민 선거에서) 돈다발을 들고 다녀도 처벌이 어렵다”면서 “대책이 모두 현실화된다 해도 해외 선거사범의 40~50% 정도만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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