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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중도실용, 말은 옳은데 실천 안 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박지원(사진) 의원에겐 지난달부터 ‘청문회 킬러’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때 천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를 날카롭고도 정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천 후보자는 검찰총장직을 포기해야 했고, 청와대는 부랴부랴 인사검증 시스템을 보완했다. 그런 그의 인기는 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치솟고 있다. 그걸 인지한 정세균 대표는 박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임명했다. 14일 오후 박 의원을 인터뷰하려던 찰나 한 고위 검사가 그의 방(의원회관)을 찾았다. 최근 검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지금 검찰 조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했다.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의 검증대에 오를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를 잘 봐 달라는 얘기였다. 박 의원은 그냥 웃으며 그를 문밖까지 배웅한 다음 인터뷰에 응했다.

“DJ, 결국 훌훌 털고 일어날 것”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있는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어떤가.
“대통령이 입원한 지 오늘로 33일째다. 그동안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건강 상태를 알리는 수치는 좋다. 유동식 음식도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확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이 워낙 의지가 강한 분이므로 결국은 훌훌 털고 일어나실 걸로 본다.”

-병상을 지키면서 뭘 느끼나.
“많은 분이 쾌유를 기원하는 데서 감동을 받았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 부인은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서 보냈고, 주부들은 쾌유를 기원하는 글들을 모아 책자를 만들어서 가져왔다. 국내외에서 많은 방문객이 줄지어 병실을 찾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병실을 찾은 다음 “DJ와 화해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DJ에게 전했나.
“YS가 다녀가셨다는 말씀은 드렸다.”

-DJ가 말을 알아듣나.
“그렇다.”

-박 의원이 병실을 지키면서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바람에 DJ 비서실장을 지낸 권노갑·한광옥 전 의원 같은 분들도 DJ를 잘 못 만난다고 한다. 그분들의 불만이 크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분들이 대통령을 더 오래 모셨고, 더 가깝다. 우린 서로 협력해서 대통령을 잘 모시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이 나오나.
“그분들이 아니고, 일반 면회객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 중환자실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만큼 일반 면회객들을 정리하다보니 섭섭하다는 말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10월 재·보선, 손학규·김근태 나와야”
-민주당의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나라가 잘되고, 민주당이 잘된다면 당의 수위도 좋다는 뜻에서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정세균 대표의 통보를 받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좋은 역사, 좋은 정책, 좋은 유업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자유당이고, 우리의 뿌리는 반세기 전 자유당에 맞서 생긴 민주당이다. 자유당의 독재정치, 독점경제, 북진통일에 맞서 민주정치, 시장경제, 평화통일의 기치를 내건 게 민주당의 창당 정신이다. 우린 그걸 지키면서 시대에 맞게 변화를 주려 한다.”

-민주당이 반성할 건 없나.
“민주당이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린 측면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에서 졌고, 지난해 총선 결과도 그렇게(한나라당에 완패) 나왔다. 그런 걸 반성하면서 당을 개혁해 나갈 것이다.”

-민주당에 강력한 차기 대선 주자들이 없다는 것도 문제 아닌가.
“한나라당에는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의원 등 눈에 보이는 큰 바위가 있다. 그런 바위들이 굴러다니니까 눈에 잘 보이고, 그들이 부딪히니까 소리가 나는 것 아니겠는가. 민주당엔 현재 정세균 대표 혼자만 보이니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훌륭한 재목들이 많다. 개인적으론 10월 재보선에 손학규김근태 전 의원 등 민주당 소속의 비중 있는 정치인들을 출마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 당에서도 큰 바위들이 굴러다니는 게 보일 것 아니냐. 우리가 10월 선거에서 승리하면 좋은 인사들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고, 2012년 대선 땐 정권을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이다.”

-장외투쟁을 언제까지 할 건가.
“민주당은 6월 국회의 회기를 8월까지 연장하자고 했다. 미디어 법안에 대해 더 협상을 하고, 민생법안을 잘 처리하자고 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지난달 미디어 법안을 단독처리하고 국회 문을 닫았다. 그래서 우린 장외투쟁을 하지만 한나라당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의원들은 해외에 나갔거나, 계파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니냐.”

-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에도 참여하지 않고 장외투쟁을 할 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 말 서거했을 때 나는 6월 국회를 바로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를 통해 500만 명을 민주당에 줬다. 우리가 그런 추모 열기를 등에 업고 바로 등원해서 강력한 원내투쟁을 했더라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주국야광(晝國夜光)’을 하자는 입장이다. 낮에는 국회에서 투쟁하고, 밤에 필요할 경우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들자는 거다. 우리는 9월이 되면 9월의 행동을 할 것이다. 무조건 등원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9월 정기국회가 되면 합당한 행동을 하겠다는 거다.”

“개헌 필요하나 쉽지 않다”
박 의원은 DJ가 청와대에 있을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번 만났다. 그는 DJ 정권 때 김 위원장과 가장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남한 측 인사였다. 2000년 8월 김 위원장은 박 의원 부부를 가수 이미자씨와 함께 초청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씨의 북한 공연과 박 의원 부부의 방북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북한 핵문제에 대한 박 의원의 견해를 물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정보가 있나.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사람의 얘기나 정부의 보고 등을 종합하자면 김 위원장의 건강이 업무 수행에 지장을 주진 않는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남한의 일부 인사가 바라는 대로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북한이 혼란해지면 우리에겐 이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군이 미국 군부와 친하듯 북한 군부는 중국과 가깝다. 김 위원장 건강에 이상이 발생하면 북한에는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김정일의 3남 김정운의 후계 체제가 순조롭게 확립될 수 있다고 보나.
“김정일 위원장이 오랫동안 집권하는 게 가장 좋다. 북한에서 가장 친미적이고, 개혁·개방적인 사람은 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됐을 때 능력과 노력으로 후계 체제를 잘 확립했다. 그러나 김정운의 경우 아직 그런 능력과 노력은 안 보인다.”

-북한이 미국인 여기자 2명을 풀어줬고,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를 석방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나.
“좋은 시작이다. 미국이나 북한이나 그 길밖에 없다. 그런 그 길을 한국의 정부·여당만 모른다.”

-‘그 길’이 무엇인가.
“대화와 교류·협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더 급한 상황이다. 그의 건강문제가 대두된 데다 나이(67세)도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겠다고 했다. 그건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즉 경제를 살리겠다는 얘기 아니겠느냐. 북한의 체제나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나라는 결국 미국밖에 없다. 미국이 족쇄를 풀어줘야 국제금융기구도 북한을 지원하지 않겠느냐. 오바마는 2012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돼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면서도 대화의 신호를 보내는 건 북한 문제를 꼭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가을부터는 북·미가 대화를 시작할 걸로 본다. 그런 기류를 이명박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와 실용을 표방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웃으면서) 구시심비(口是心非)다. 입으로 하는 말은 옳으나 실제로 실천되는 건 없다는 뜻이다. 앞으로 정말 말대로 하는지 지켜보겠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떨고 있는 것 같더라.
“이미 드러난 위장전입 문제와 관련해서는 삼척동자도 문제가 있다는 걸 다 안다. 사정기관의 수장이 될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청문회 때 차근차근 검증하겠다.”

-천성관 전 후보자를 낙마시킨 정보력은 어디에서 나왔나. DJ 집권 시절 박 의원의 신세를 진 공무원들이 준 것인가.
“이명박 정부가 과거 나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은 다 밀어냈다. 현 정권의 눈으로 보면 나는 ‘악의 축’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공무원이 나에게 정보를 주겠는가.”

-헌법 개정을 찬성하나.
“대통령직을 차지하기 위해 5년마다 혈투가 일어나고, 그 앙금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건 국가에 도움이 안 된다. 개인적으론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정권은 개헌 시기를 놓쳤다. 이 대통령 취임 1년 안에 했어야 하는데 이젠 쉽지 않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상황에서 개헌론이 힘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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