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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다녀온 50대, 발열 일주일 만에 숨져

중앙선데이

입력

15일 한국에서 신종플루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왔다. 태국을 다녀온 뒤 발병했고 뒤늦게 타미플루를 접종했지만 듣지 않았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이 15일 서울 보건복지가족부 브리핑실에서 국내 첫 신종플루 감염 사망자 발생과 관련한 경과 설명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신종플루(인플루엔자 A/H1N1) 감염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15일 처음 나왔다. 지난 5월 2일 멕시코로 봉사 활동을 다녀온 50대 수녀가 국내 첫 신종플루 감염자로 확인된 지 3개월여 만이다. 일본에서도 이날 신종플루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는 “경남에 거주하는 56세 남성이 태국 여행 후 신종플루와 관련해 발생한 폐렴·패혈증으로 15일 오전 8시30분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다행히 환자와 함께 여행했던 동료나 가족, 담당 의료진은 감염 증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감염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0.7~1%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라며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변종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평소 손 씻기 등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면 과도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현재 경계단계인 국가 전염병 위기 단계를 상향 조정하거나 방역체계를 바꿀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서 신종플루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환자는 모두 2032명으로, 이 중 402명이 자택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타미플루 투약도 소용없어

이 본부장은 15일 오후 기자 브리핑에서 “이 환자가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직장 동료들과 태국 여행을 다녀온 뒤 발열 등의 증세를 보였고 평소 건강했다는 주위의 말을 종합해볼 때 신종플루 감염으로 인해 폐렴과 패혈증 등의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환자는 8일 처음 발열 증상을 보여 보건소를 방문한지 일주일 후에야 신종플루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아 보건당국 방역관리의 허점이 드러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환자 A씨는 귀국한 지 사흘 뒤인 8일 열이 나 보건소를 찾았다. 하지만 당시 체온이 37.7도로 신종플루 의심 기준(37.8도)에 못 미치고, 콧물이나 기침 등 호흡기 증상도 없었다. 보건소 측은 진행 경과를 지켜보자며 바이러스 차단용(N95) 마스크와 항균비누를 줘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자신이 다니던 집 근처의 한 의원에서 간단히 약을 처방 받아 귀가했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호흡곤란·전신통 등으로 증세가 악화됐다. 지역병원 응급실에서 X선 검사 등을 통해 세균성 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증세는 더 심해졌다. 인근 종합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중증 세균성 폐렴이라는 진단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기계호흡과 항생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12일 의료기관 측은 원인 규명을 위해 검체를 채취, 검사한 결과 신종플루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그때부터 타미플루를 투약했다. A씨는 그러나 신종플루 확진 판정이 난 15일 오전 결국 숨을 거뒀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 패혈증이란 감염된 세균이 혈액에 퍼지며 염증을 일으켜 심하면 장기 기능 장애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보건당국은 A씨가 일반적인 폐렴 환자에 비해 처음 증상이 나타난 이후 패혈증까지 병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보고, 상세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정밀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유족들의 반대로 부검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들이 “항바이러스제를 일찍부터 투여했으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이 본부장은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이 환자의 폐렴과 패혈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파악하기 위해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자가 보건소에 갔을 때만 해도 증세가 미약했다. 이후엔 의료진이 바이러스성 질환을 의심할 만한 근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의료진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A씨는 X선 검사에서 한쪽 폐에만 염증이 발견되는 등 전형적인 세균성 폐렴의 특징을 보였기 때문에 의료진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처음부터 세균성 폐렴이 발생한 것이라면 조기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했더라도 효과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본부장은 “지난달 29일부터 65세 미만의 폐렴 환자는 무조건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분류해 관리토록 하고 있지만 감염내과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면 제때 생각을 못할 수 있다”며 “어쨌든 의료진이 바이러스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조기에 하지 못해 신종플루 진단과 항바이러스제 투약이 늦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신부와 비만한 사람 특히 주의
이번 사건으로 보건당국의 ‘신종플루 진단기준’과 지침이 의료기관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보건당국은 신종플루 환자가 학교나 군대 등 단체생활을 하는 곳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지자 지난달 29일 국가 전염병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봉쇄와 차단’ 중심의 방역체계를 ‘조기치료’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의료기관들에 환자들의 1차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르면 ▶37.8도 이상의 발열과 ▶콧물 혹은 코막힘 ▶인후통 ▶기침 같은 급성 열성 호흡기질환 증상을 보이면서 신종플루 발생 국가에 다녀왔거나, 확진환자와 접촉한 경우, 혹은 65세 미만의 건강했던 사람이 중증의 급성호흡기질환 증상으로 입원했을 때는 신종플루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역학조사와 항바이러스제도 투약해야 한다. 이 본부장은 “병원협회와 의사협회를 통해 병·의원에 홍보토록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며 “신종플루 대응 체계를 재점검하고 의료 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에서도 15일 첫 신종플루 사망자가 나왔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오키나와(沖繩)현에 사는 50대 남성이 신종플루로 인해 지병인 심장병 등이 악화돼 이날 새벽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남성은 최근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일본 내 다른 신종플루 환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6일 현재 확진자를 기준으로 신종플루 감염자는 전 세계적으로 17만7457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1462명이 사망했다. 보건당국은 신종플루 예방의 가장 중요한 요령으로 ‘철저한 손 씻기’를 권한다.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만큼 손을 자주 씻고 손으로 눈·코·입을 만지는 것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감염이 되면 증상이 나타난 뒤 7일까지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으며, 어린이는 10일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감염이 의심되면 마스크를 착용한 뒤 우선 보건소에 신고해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만성심장폐질환이 있거나 천식·당뇨 환자, 65세 이상의 노인인 경우 중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해외 사망자들의 사례를 볼 때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질환과 비교해 비만하거나 임신한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런 고위험군은 증상이 나타나는 대로 곧장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까지 임신부가 항바이러스제를 먹어도 별다른 부작용은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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