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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5대그룹 구조조정 적극개입 의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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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본격적으로 재벌개혁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한국의 개혁은 5대 재벌의 개혁에 달려 있다" 며 독려하고 나섰고 정부 관련 부처의 장들이 모두 나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았거나 준비중인 일련의 조치들에는 재벌개혁에 일정 수준과 목표를 정해놓고 여기에 미달하면 정부가 가진 수단을 총 동원해 이를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이번엔 진짜다.

과거 정권처럼 '재벌 길들이기' 정도가 아니라 30년 이상 계속된 재벌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것" 이라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재벌개혁 밑그림은 현재의 선단형 기업집단을 일단 소그룹 형태로 분리한 뒤 궁극적으로는 개별기업 단위로 쪼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편의 열쇠는 상호지급보증의 해소다.

그 수순은 ▶우선 연말까지 다른 업종간 채무보증을 해소해 소그룹단위로 재편한 뒤 ▶오는 2000년 3월말까지 동종업종 내의 상호지급보증도 풀어 독립기업화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간 재벌구조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문어발식 경영' 이니 '연쇄부도' 니 하는 것들은 아예 사라지게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5대 그룹 간판기업 일부와 이에 연결된 부실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을 강제적으로라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개혁이 미진한 재벌에 대해서는 은행대출 제한 등 강도높은 제재를 통해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5대 그룹 중 일부는 연말까지 자력으로 이 (異) 업종간 채무보증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해소해야 할 금액이 수조원에 이르러 이를 일시에 상환하면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 등을 통한 워크아웃 선정은 5대 그룹으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워크아웃 대상기업은 채무보증이 1~2개 간판기업에 몰려있는 5대 그룹의 특성상 간판기업을 포함한 부실계열사 다수가 선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가 이처럼 재벌개혁의 수위를 높여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 것은 그간 5대 그룹 구조조정이 부진하다는 국내외의 비판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5대 그룹 개혁 부진" 발언이나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가 "5대 그룹 구조조정을 지켜본 뒤에야 한국에 대한 신용평가 등급 상향조정을 고려할 수 있다" 고 한데서 보이듯 재벌개혁은 한국의 개혁의지에 대한 마지막 시금석으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정 등을 이유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않는 5대 그룹의 미온적인 태도도 정부의 적극 개입의지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재계가 내놓은 이른바 7대 업종 구조조정안을 '알맹이 없는 시간끌기용' 으로 일축하기도 했다.

재계의 자율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관계자들의 시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그러나 5대 그룹 개혁을 일일이 강제할 의사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어떤 기업을 살리고 죽일 것인가는 기업 스스로 정하게 놔 두겠다는 뜻이다.

다만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동원해 이러한 개혁조치들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압박해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재벌개혁의 고삐도 매고 안장을 얹을 때가 됐다는 얘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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