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고공 비행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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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제유가를 연일 사상 최고로 끌어올리고 있는 러시아의 유코스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한때 러시아 법무부가 유코스사에 대한 계좌 동결 조치를 철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결 전망을 보였던 유코스 사태는 법무부가 바로 다음날 이전 조치를 번복함으로써 또다시 냉각됐다.

러시아 금융계 소식통은 "5일 세무 당국이 유코스사의 체납 세금을 강제 징수하는 차원에서 9억달러를 거둬들여 이 회사의 금고가 바닥났다"고 전했다. 유코스 측은 "회사의 은행 계좌에는 아직 돈이 남아있지만 다음주 중순에는 모든 현금이 바닥나 원유 생산활동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코스사의 국내 주식 가격이 하루 15% 이상씩 하락하고, 국내 투자 자본들이 대거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등 경제 불안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5일"올해 러시아의 순자본 유출이 80억~85억달러로 급증하고, 자본 유출이 2~3년 안에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자본 유출액 29억달러의 세배 정도 규모다. 당초 중앙은행이 예상했던 65억달러를 훨씬 넘어선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러시아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연기한 것도 유코스 사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원유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가격이 장중 배럴당 44.40달러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러시아가 세계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코스 사태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검찰이 이 회사 회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비롯한 간부들을 탈세.횡령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이 러시아 대선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크렘린이 보복 차원에서 유코스 수사에 나섰다는 설이 유력하다. 러시아 정부가 1990년대 초반 국유재산 사유화 과정에서 불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독점재벌들을 손보기 위해 유코스 수사를 시작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코스는 2000년 탈세혐의로 모두 34억달러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세무 당국은 또 2001년 탈세액 33억달러의 납부도 요구하고 있다. 푸틴 정부는 최근 유코스사의 생산부문 핵심 자회사인 유간스크네프테가즈를 매각해 체납세금을 강제 회수할 방침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국영에너지 회사를 통해 유코스를 사들일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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