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BOOK] “뒤통수 조심해” 출판·연예산업의 추한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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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톰 크루즈에게 전화가 걸려오게 하는 법
앨리 오브라이언 지음, 이옥용 옮김
이미지박스, 512쪽, 1만2800원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며 오는 법은 없다고.”

이 소설을 읽으며 이 대사가 떠오른 건 주인공 테스 트레이크가 끊임없이 뒤통수를 맞기 때문이다. 테스는 영국 최대 에이전시의 능력 있는 에이전트이자 서른여섯의 커리어우먼. 그가 독립이라는 ‘원대한 꿈’을 꾼 것이 모든 사단의 시작이었다. 자신의 ‘안전망’이며 ‘방탄 조끼’였던 회사를 박차고, 가슴에 과녁을 씌운다는 각오로 사표를 던질 궁리를 하던 테스 앞에 그의 발목을 잡는 메가톤급 사건들이 뻥뻥 터진다.

에이전시의 1인자 로웰 바드라이트가 의문의 죽음을 맞고, 로웰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상사 코시마와의 갈등은 커져만 간다. 코시마의 남편이자 테스의 연인인 ‘다아시’와의 사랑도 꼬인다. 재계약을 앞둔 알짜배기 고객 아동작가 도로시 스타크웰은 표절 의혹에 직면한다. 물론 테스의 머리 위에 떨어진 폭탄은 더 많다. 모든 상황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테스는 전전긍긍하고 종종걸음 치지만 추락은 피할 수 없었다. “추락할 때면 가속도가 붙는 법이다. 나는 나쁜 소식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된 기분이었다”는 푸념을 할 정도니.

테스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내린 일련의 사건들은 스캔들과 성상납, 조작된 언론플레이와 노이즈 마케팅 등 그가 몸담고 있는 출판·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정말로 나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는 테스의 토로처럼 욕망을 향해 움직이는 그 세계의 모습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가깝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이 추잡한 투쟁에서 테스가 맺고 쌓아온 애증과 우정의, 신뢰의 혹은 신뢰라고 믿었던 인간관계는 부메랑이 되거나 뜻하지 않은 든든한 동아줄로 복잡하게 뒤엉키며 배신과 반전의 드라마를 그려낸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짜임새 있는 구성만큼이나 소설이 더 매력적인 것은 치열하게 때로는 피를 철철 흘리며 세상에 맞서는 테스의 속내를 엿보는 데 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테스의 반성과 성찰은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안정하고 엉망인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이 꿰뚫어 보는 것이 두려워 갑옷으로 무장한 채 강인한 얼굴만 보여온 테스는 인정한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며, 가면 뒤의 우리는 슈퍼맨이 아님을. 그래서 테스는 “나는 이제 이곳저곳 문을 두들기며 새로운 고객을 섭외하기 시작해야 한다”며 씩씩하게 말한다. 뒤통수를 맞은 테스는 한 뼘 더 성숙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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