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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그린벨트 껍데기만 남기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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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마침내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 를 대폭 해제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그린벨트 제도는 71년 도입된 이래 47차례에 걸쳐 주민불편 해소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손질돼 왔지만 그 기본틀은 유지돼 왔다.

그러나 이번 '제도개선안' 은 말이 '개선' 이지 내용면에서 제도의 틀을 허무는 전면 재조정이다.

지정 실효성이 적은 상당수 도시권역들은 그린벨트 지정이 전면 해제되고, 그린벨트로 남게 되는 도시권역에서도 시가지 집단취락 등 보전가치가 낮은 지역들은 선별 해제된다.

정부의 정책의지부터가 그린벨트 고수보다는 해제 쪽에 쏠려 있다.

그린벨트 대폭 해제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넘어 '소신' 으로 인식되고 당국자들은 정해 놓은 시한에 쫓긴 듯 졸속추진의 양상마저 빚고 있다.

25일 시안발표, 12월 한달동안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수렴, 연말까지 조정기준 확정,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연구기관들의 환경 평가, 내년 하반기 이후 지자체별 조정작업 실시 등 스케줄은 숨이 가쁘다.

그린벨트는 논란도 많고 이해당사자들간의 주장은 백가쟁명이다.

그럼에도 도시의 비대화를 막고 환경을 보전하는 순기능 때문에 지금까지 지탱돼 왔다.

27년 전 도입 당시와는 여건이 달라져 근본적인 조정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조정은 국가 백년대계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근 30년 고수해 온 제도의 틀을 허무는 데는 충분한 사전검토가 필요하다.

'지정의 실효성' 을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고 해제 기준 또한 객관적이고 엄정해야 한다.

구역 주민들의 이해가 걸린 사안인데다, 지자체들의 반발을 우려해 형평성을 의식하다 보면 나눠먹기식이 되기 십상이다.

그린벨트내 모든 토지를 대상으로 환경적 보전순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이 기준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별로 구체적 환경평가를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의 욕구와 인문환경이 무시된 자연환경 위주 평가의 객관성이 문제이고, 이 복잡한 작업들이 서두른다고 될 일인가.

그린벨트는 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꼭 해제를 않고서도 야외음악당이나 잔디구장.조깅코스 등으로 녹지를 활용할 수도 있고, 개발권양도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구역내 토지소유자들에게 보상해줄 수도 있다.

그린벨트는 일단 손을 대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토지거래허가제로 투기는 막는다지만 무질서한 개발을 막으려면 도시 전체의 장기적 개발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의 이익간에 균형점을 찾는 정책적 노력은 접어두고 제도의 껍데기만 남길 것인가.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에서 그린벨트의 참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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