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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대공황에 상처받은 인류, 이젠 자기부정 버릴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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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센미하이 교수가 1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9회 유민기념강연회에서 ‘긍정적 사고와 위기 극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인간은 스스로를 ‘다른 생물과는 구분되는 뛰어난 존재’로 믿어 왔다. 자기가 만든 기술과 문명을 흠모해 왔다. 20세기 들어 엄청난 규모의 전쟁과 경제공황이 발생한 후, 인류는 스스로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두 세대를 거치면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비관적 시각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인류는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

칙센미하이 미 클레어몬트대 교수 유민기념강연회

제9회 유민기념강연회에 초청된 미하이 칙센미하이 교수는 ‘긍정의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몰입의 즐거움’으로 널리 알려진 학자지만, 이날 강연에서는 몰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긍정의 심리학’은 지난 5년간 그가 진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인간 의식의 진화=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생물과는 독립돼 있는 존재’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100만~200만 년 전이다. 100만 년 전부터 인간은 학습을 통해 ‘가족과 같은 단체에 대한 소속감’을 배웠다. 5만 년 전에는 언어가 발생했다. 인간은 노래와 언어를 통해 경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는 종교적 의식이 발생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도 시작했다. 동굴의 벽화가 그런 것이다. 기원전 1만 년 전엔 도시가 생겨났다. 농사의 시작으로 인해 ‘잉여 식량’이 생겨났다.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정보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에 관한 생각, 즉 과학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이때부터 스스로에 대해 ‘힘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인도·중국 등 고대 문명에서 ‘전설적 영웅’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기원전 1400년 전부터는 ‘위대한 종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대교와 불교 등이 그것이다.

1600년대 이후의 인류 역사는 ‘과학과 기술의 물결’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눈부셨다. 데카르트처럼 인간 이성에 대해 큰 신뢰를 갖는 철학자들이 생겨났다. 20세기 들어 이런 생각은 극에 달했다. 인간에 대한 긍정이 극에 달한 시점에, 인류는 전쟁과 경제공항을 치렀다.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비이성적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파괴했다. 오만했던 인간의 반성이 시작됐다. 반성은 곧 인간에 대한 비관으로 치달았다.

◆과거로부터 지혜를 빌리다=우리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발전시키기 위해 과거로부터 지혜를 빌려올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성경의 한 부분)에서 ‘믿음·소망·사랑’을 얘기했다. 이타적으로 남을 돕고, 긍정과 인내·사랑을 통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바른 태도와 열린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과 공기에 감사한다”는 조로아스터교는 환경 보호에 대해 진일보한 가치를 담고 있다. 이는 모두 ‘더 행복한 삶’ ‘더 나은 삶’을 위한 기본 가치들이다.

긍정 심리학은 세 가지 일을 이루려고 한다. 첫째, ‘우리가 우리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확립할 것이다. 조국과 부모·학교로부터 피해를 보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 돼야 한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책임’이다. 그것은 우리 가족과 국가, 더 나아가 지구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다. 인류는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의 청지기 역할’이다. ‘사람들이 전적으로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인간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리=강인식 기자



방청석 꽉 차 300여 명은 통로 바닥서 청취

제9회 유민기념강연회가 열린 1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단상에는 강연자 칙센미하이 교수와 사회자·토론자가 앉아 있었다. 그 바로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아 강연을 들었다. 300개의 좌석이 마련됐지만, 바닥에 앉거나 회의장 뒤에 서 있는 사람이 300여 명이나 됐다. 좌석은 강연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꽉 찼다. 동시통역기 300개도 일찌감치 떨어졌다.

이날 강연 주제는 ‘긍정적 사고와 위기 극복’이었다. 일종의 ‘행복론’이다. 행복한 인생에 대해 석학에게서 한마디라도 듣고 싶은 600여 명의 열망이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사회를 맡은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분이 오셨다”며 “강연을 듣기 위해 바닥에 앉아 있고, 의자에 앉아 있고, 서 있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방청객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대학생 박모씨(19)씨는 “더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살고 싶어 강연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70대 남성은 “살아 보니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져야 더 행복해지더라”며 “일흔이면 나이가 많다고 하지만 남은 인생을 더 낫게 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대구·목포 등 지방에서 강연을 들으러 온 이들도 있었고 종교인도 여럿 눈에 띄었다.

방청객은 “사는 게 바쁘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된다” “비판적 사고와 긍정적인 생각을 조화롭게 할 수 있나” 등의 질문을 칙센미하이 교수에게 쏟아냈다.

시간이 부족해 질문을 하지 못한 이들은 강연이 끝나고 난 뒤, 단상으로 찾아와 칙센미하이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정봉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칙센미하이 교수

몰입이 주는 행복감 연구
긍정 심리학 분야의 대가

미하이 칙센미하이(75) 교수는 긍정 심리학 분야의 대가다. ‘몰입 이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로 40년을 재직했다. 현재 미국 클레어몬트대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 교수 겸 삶의 질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헝가리 출신인 칙센미하이 교수는 평생 동안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연구해 왔다. ‘활동 그 자체’에 완전히 빠져드는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면 만족을 얻고 이로써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게 몰입 이론의 핵심이다.

그는 수십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중 『몰입의 즐거움』 『몰입의 경영』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됐다. 미국교육학회, 미국예술과학학회, 국제여가활동연구학회 등의 회원이 다. 

이정봉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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