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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암기식 대학 강의, 고교 수업과 뭐가 다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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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3일 서울 연세대 상남경영관에서 ‘대학 교육에 바란다’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전국 대학생 40명과 교수 20여 명이 참가해 3시간30분간 토론을 했다. [김상선 기자]


세계 대학 평가에서 100위 안에 드는 국내 대학은 서울대(50위)와 KAIST(95위) 두 곳뿐이다(영국 더 타임스 2008년 평가기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올해 조사에서도 한국 대학교육의 경제사회 요구 부합도는 57개 국가 중 51위였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생이 됐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등록금은 연간 1000만원에 이른다. 그러면 대학생들은 우리 대학의 현실을 어떻게 볼까? 13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와 전국대학교무처장협의회가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세대에서 연 ‘대학교육에 바란다’ 포럼에서는 대학생 40여 명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형식적인 교수 강의평가를 전면 공개하라” “주입·암기식 교육을 한다” “교수들과 소통할 통로가 적다”는 비판도 많았다. 교육과학자문위는 대학생들의 제안 등을 담은 ‘대학교육 선진화 종합계획’을 수립해 9월 말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토론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윤혜령(KAIST 산업공학 3)=“수업시간이 지루하고 재미없다. 커뮤니케이션이 없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학생이 없는 게 학생만의 문제인가. 교수들도 소통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교수 간 실력차도 크다. 대학의 가장 문제는 강의평가 피드백이 약하다는 것이다. 학생은 비싼 돈(등록금)을 내고 있는데 질 높은 강의는 얼마나 되나. 대부분 대학에 교수학습개발센터가 있지만 학교에서 교수법이 떨어지는 교수들이 이런 센터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심여울(성균관대 경영학부 3)=“세계는 창의적 인재를 원하지만 우리 교육 시스템은 이와 맞지 않는다. 수동적인 대학생만 양산하고 있다. 교육체계의 변화가 없다. 취업기관으로 변질됐고 초·중·고처럼 주입·암기식 교육을 한다. 개선점을 말해도 피드백이 안 된다. 적성을 탐색할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전공에 맞는 공부가 아니라 취업에 맞게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도전정신이 떨어진다.”

▶탁경재(연세대 화학공학 4)="대학이 연구비에 따라 서열화되고 교수평가도 연구 중심이기 때문에 학생을 위한 학부 수업이 소홀해졌다. 학생 입장에서도 취업을 목표로 하다 보니 학점 잘 주는 수업만 듣는다. 연구만 중시하는 교수와 취업만 중시하는 학생이 많아져 학교 수업이 나태해지고 있다.”

▶이경석(성균관대 경영 2)="대학도 시장이다. 등록금(투입)을 냈으니, 대학은 취업(산출)을 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취업을 하려면 학점밖에 없다. 학점 잘 주는 교수에게 강의평가를 잘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수업 내용이 좋아도 학점을 짜게 주는 교수는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귀찮은 토론을 하고 시간을 뺏는 교수도 싫어한다. 발표 1번에 학점 1점 더 준다고 하면 다들 손을 든다. 이게 대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다. 학생도 교수도 반성해야 한다.”

▶김민석(숭실대 경제 2)="실물경제는 빨리 변하는데 교육은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획일적인 교육을 받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교수 강의평가에 문제점을 제기해도 어떤 점이 개선, 보완됐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너무 많다.”

▶조혜승(고려대 경제 2)="학부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싶다. 1학년을 마치면 전공을 바꾸고 싶어하는 학생이 60%에 달하는데 학점 때문에 희망을 접는 친구들이 많다. 1학년은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할 때지만 그런 점을 무시하고 학점도 성적 순으로 준다. 고교 때처럼 창의적인 학교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강수훈(전남대 법학 4)="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방황하고 수능도 다시 봐서 법학과로 전과했다. 그런데도 지금 취업이 어렵다. 대학도서관에 가봐도 다 토익 책 공부한다. 이럴 바에야 대학교육보다 전문고시학원에서 빨리 합격하는 게 낫지 않는가. 대학에서는 사법시험이나 공무원시험 수강생에게는 수강료 50%를 지원하고 고시원에 4000만원을 투자한다. 하지만 ‘수학경시대회’나 ‘영어세미나’ 등 기초학문에 치중하는 학생들은 전혀 지원받지 못한다. 연구비 등을 착복하는 비윤리적인 교수들의 모습도 보인다.”

▶조유리(연세대 자유전공학부 1)="꿈꾸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 하지만 혼자 꿈꾸고 있는 것 같다. 내 꿈을 동조하고 키워줄 교수는 어디 있는가. 지금 대학은 사람이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꿈 많은 학생들이 세월을 허송한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대학교 1학년이다. 학교에서도 전공 탐색을 폭넓게 제공하고 많은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박성렬(성균관대 기계공학 2)="우리 학교는 모든 신입생이 공학인증을 받기 위해 정해진 로드맵 커리큘럼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아직 공학인증이 정착된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의무이기 때문에 정작 배우고 싶은 교양과목은 엄두를 못 낸다.”

◆교수들의 자성=학생들의 거침없는 지적을 받은 20여 명의 교수들은 “섬찟했다”고 말했다. 박승철 전국대학 교무처장 협의회 회장(성균관대 화학과 교수)은 “대학들의 교육 업적 평가는 40% 전후이지만 연구 능력만큼 승진·재임용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아 자극이 부족했다”며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강의평가를 학생들에게 다 공개해 선택받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숭실대 교무처는 올해 초 3년간의 교수·강사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모아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라는 책을 출간한 사례를 소개했다. “▶음담패설도 수업인가요 ▶강의계획서 따로 수업 따로 ▶맘대로 휴강 멋지십니다” 같은 신랄한 내용이 실렸다. 황준성 교무처장은 “교수들이 흥분하고 열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학생 의견을 존중했다”며 “학생 의견을 반영해 강의평가에서 일정 수준 이하는 퇴출시키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동대 김영섭 학사부총장(교무처장)은 “초·중·고 교원들도 평가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학생 중심으로 당신의 교수를 평가하라(Rate your professor)는 운동을 전국 대학에 전개하면 교육 르네상스가 올 수 있다”며 “2020년까지 전체 강의의 50%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열린 강의(open lecture)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답했다.

이원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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