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국 영화 제2의 부흥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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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급전직하, 궤멸의 위기에 몰렸던 한국 영화가 기사회생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에 유난히 좋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때문이다. 특징적인 것은 ‘해운대’와 ‘차우’ ‘국가대표’ 등 큰 영화는 큰 영화대로, ‘똥파리’와 ‘낮술’ ‘워낭소리’ 등 작은 영화는 작은 영화대로, 또 ‘과속스캔들’과 ‘7급 공무원’처럼 중간급 영화는 중간급 영화대로 모두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는 점이다. 규모 면에서만 성공적인 것이 아니었다. 재난영화에서 괴수영화, 공포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실험들이 전개됐다는 점도 한국 영화의 원기회복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로맨틱 코미디 등 다소 천편일률적인 작품들을 양산했던 지난 2년간의 ‘무료함’과 비교할 때, 관객들은 새로운 영화들을 만나게 되자 열광하기 시작했다.

지난 2~3년간의 한국 영화계는 극단의 경기침체로 사달이 날 지경이었다. 제작사 폐업이 잇따르고 투자자들은 거의 등을 돌렸다. 투자자들에게 영화 얘기를 하면 사기꾼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확실히 바뀐 것으로 보인다. 경제전문가들은 아직은 한국 경제가 안심할 때가 아니다 어쩐다 말이 많지만 영화 쪽만큼은 확실히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 영화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수치가 말해주고 있다. 지난 상반기 동안 극장 매출은 역대 최대 규모를 만들어냈다. 물론 ‘터미네이터4’나 ‘트랜스포머2’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극장가에 훈풍을 몰고 온 것은 명실공히 한국 영화들이었다. 상반기를 경유하면서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44.7%로 다시 40%대의 안정권으로 진입했다. 총 관객 수는 7217만 명, 총 매출액은 4768억원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한국 영화산업이 급전직하하기 직전인 2006년 상황으로 되돌아갔음을 의미한다. 회복기를 넘어 예전의 건강을 되찾은 셈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각에서는 한국 영화계가 침체를 극복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물론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보수적’으로 보는 것은 옳다. 하지만 시장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마케팅적’ 입장에서 보면 지나친 보수주의는 경기회복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한국 영화시장에 대해 다시 한번 장밋빛 환상을 갖게 되는 데는, 콘텐트의 우수성과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작금에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장르나 규모를 불문하고 가지가지 영화들이 대개가 웰메이드(well-made)로 만들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장르로서는 거의 처음 시도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운대’처럼 160억원대의 재난영화가 1000만 관객을 향해 승승장구하고 있는가 하면 ‘차우’와 같은 괴수영화도 만들어지고 있다. 거기에 ‘국가대표’ 같은 스포츠영화까지 대개의 작품이 수준급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영화는 콘텐트의 힘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도 한국 영화의 가능성은 살아있으며, 지난 부흥기가 결코 덧없는 ‘거품’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일깨운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투자환경을 조속하게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콘텐트의 힘은 적절한 자본의 힘과 결합할 때 그 시너지 효과를 백분 발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