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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파리 에세이]'수준'있는 파리지하철 악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파리의 지하철은 종종 '듣는 즐거움' 을 선사해 준다.

지하통로.플랫폼이나 열차 안에서 '거리의 악사' 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은 파리를 예술의 도시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언젠가 처음 파리에 온 친구와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역에 들어서자 첼로 소리가 좁은 지하통로를 가득 메웠다.

초로의 남자가 처연한 모습으로 첼로를 켜고 있었다.

지나쳐 가던 친구가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동전 한닢을 던지고 돌아왔다.

"공짜로 듣기가 아까워서 그랬다" 며 "저 정도 수준이면 무대 연주가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 고 물었다.

그 친구는 파리를 떠나면서도 '지하철 첼리스트' 에 대한 감동을 말했다.

1백년 역사의 파리 메트로 (지하철) 는 14호선까지 있다.

역은 3백79개에 이른다.

모두가 거리의 악사들에게는 공연장이면서 일터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첼로.아코디언.색소폰은 물론 하모니카까지 휴대 가능한 악기는 거의 다 보인다.

혼자 혹은 그룹으로 연주하는데 어느 경우든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실력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 운행을 맡고 있는 파리교통공사 (RATP) 는 나름대로 '품질관리' 를 한다.

봄.가을 1년에 두차례씩 오디션을 실시, 합격자에 한해 연주허가를 내준다.

심사는 음악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직접 맡는다.

보통 한번에 8백명이 신청하는데 그중 3백명 정도가 합격한다.

허가 없이 연주하면 3백50프랑 (8만원) 의 벌금을 물게 된다.

최근 르 피가로지에 따르면 메트로 연주자들 가운데 음악전공 학생들도 적지 않다.

용돈을 벌면서 대중 앞에서 공연하는 연습도 한다는 것이다.

파리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하철의 연주자' 들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배명복(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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