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실질적 성과없이 '말의잔치'로 끝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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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는 '까다로운 장소, 까다로운 의제, 까다로운 시기' (파이낸셜 타임스 14일자)에 열렸다는 점에서 산뜻한 모양새를 갖추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상당수 아시아 회원국들은 지난 1년간 경제위기로 만신창이가 됐으며, 개최국 말레이시아 역시 내우외환으로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된 데다 이라크사태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불참,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다소 맥빠진 느낌을 주고 있다.

15일 열린 각료회의에서는 오랫동안 추진해온 임.수산물 등 9개 분야의 무관세화 계획 (EVSL)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가지 가시적인 성과는 미국과 일본이 나서 1백억달러의 거금을 아시아에 쾌척하기로 한 것을 꼽을 수 있다.

◇ 신용평가회사 감시 = 이번 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모든 참가국들이 무디스.S&P 등 국제적인 신용평가회사들의 활동을 감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일본 마이니치 (每日) 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참가국들이 신용평가회사의 활동을 조사하는 방안을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삽입시키는 쪽으로 의견을 조정 중인데 미국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대부분의 참가국들이 지난해 아시아 경제위기에서 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등급을 급속히 하향조정한 것이 자금유출을 가속화시킨 주요인이란 지적에 동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 시장개방 합의실패 = 미국은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의 지지를 업고 ▶임.수산물 ▶보석▶완구 ▶원거리 통신 등 9개 분야의 완전한 교역자유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일본이 임.수산물 분야에 대한 관세 감면을 거부하고 개도국들이 일본편을 들어줌으로써 합의에 실패했다.

회원국들은 결국 이 문제는 내년 세계무역기구 (WTO) 로 넘기기로 했다.

출범 10년이 된 APEC이 무역자유화에 대한 이렇다할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데 대해 신뢰성 문제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 금융안정 = 회원국 정상들은 18일 최종성명을 통해 헤지펀드 등 단기 투기성 자본의 급격한 이동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들의 투자정보를 공개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데 인식을 같이 할 전망이다.

또 금융위기에 따른 사회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기성 자금의 국가간 이동을 완전히 봉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기타 = 아시아 위기극복을 위해 회원국간 협력을 강조하는 수준의 선언내용도 담길 가능성이 크다.

정상들은 이와 함께 21세기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기반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과학.기술.산업협력에 대한 의지를 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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