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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식회사도 농사짓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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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갈수록 농업 종사자가 줄고 고령화되자 일본이 농지법을 53년 만에 뜯어고쳐 주식회사를 농업 경영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일본의 농림수산성이 주식회사의 농업 경영 참여를 허용하는 내용의 농지법 개정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5일 보도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본의 주식회사들은 농지를 빌려 채소 등 작물을 직접 재배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의 현행 농지법은 경영진의 과반수가 농업 관계자로 구성된 법인이나 농가에만 농지를 빌려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해 4월 특구제도를 도입해 제한적으로 주식회사의 농지임대 를 허용해 왔다. 이에 따라 현재 50개 주식회사가 유기농 채소 재배.와인 생산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특구에서만 적용하던 이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키로 한 것은 현재 농업특구에 참여한 50개 주식회사가 "이윤이 나지 않으면 그대로 철수해 농지를 황폐화시킬지 모른다"는 농림수산성의 당초 우려와 달리 체계적 농지 관리를 통해 농지 활용도를 높였다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다.

외식산업 업체인 와타미푸드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지바(千葉)현의 농업특구인 산부마치(山武町)에서 경작 포기지 4.7㏊를 빌려 500t에 달하는 유기농 채소를 생산 중이다.

또 야마나시(山梨)현의 경우 와인 제조업체가 밭을 빌려 포도재배, 와인제조.판매에 이르는 일관 관리를 맡아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주식회사의 농업 경영 허용이 농지 활용도를 높이고 저마다 특색있는 농업 경영을 확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농민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2000년의 경우 경작 포기지가 21만㏊에 달하는 등 '농지의 공동화'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업 분야에서 이처럼 발 빠른 규제개혁에 나서고 있는 배경에는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자유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세계무역기구(WTO)협정을 통해 내년까지 농산물의 관세 인하폭이 결정되는 데다 아시아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국산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뉴스분석] 기업농 육성 제도는 한국이, 효과는 일본이 앞서

한국이나 일본이나 농업이 골칫거리이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말 농업 개방 협상(도하개발 어젠다)이 마무리되면 두 나라 모두 농산물 수입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농업의 활로를 찾는 두 나라 정부의 자세는 차이가 난다. 두 나라 모두 기업을 농업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선 부분도 있다. 그러나 효과 면에선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기업의 농지 임대가 허용되는 특구 제도를 도입하면서 "효과가 있으면 확대한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해 보니 효과가 있었고, 일본 정부는 약속대로 이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키로 한 것이다.

일본의 정책이 효과를 본 것은 기업들이 진짜 가려워 하는 곳을 제대로 긁어줬기 때문이다. 개발 수요가 줄면서 일감을 잃어가던 지방 토목 업체들에 농업이란 새로운 시장을 제공해 줬다.

반면 한국 기업의 농업 진출은 미미하다. 농지 임대를 엄격히 제한해 온 일본과 달리 한국은 기업이 농지를 임대하는 데는 거의 제약이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길만 열려 있지 생산.가공.유통 시스템이 여전히 후진적이어서 웬만해선 이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물꼬를 터주기보다 뒤따라 가기 바쁘다. 경기도 안성의 13개 농협은 10년 전부터 연합체를 구성해 농산물을 팔고 있다. 기업 경영 기법을 적극 도입하니까 판로는 넓어지고, 품질은 좋아졌다. 그러나 이 연합체는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법적으로 법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에야 이 부분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연합체가 생긴 지 10년 만의 일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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