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성공 조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열띤 유치전을 벌였던 첨단의료복합단지가 대구 신서 혁신도시와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로 결정됐다. 2038년까지 100만㎡ 규모에 5조6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원래 한 곳을 최종 선정할 예정이던 대형 프로젝트였으나 결국 복수 선정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향후 예산 증액, 중복투자 문제, 특화 유도 방안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성공적으로 조성되었을 경우, 82조2000억원의 생산증가 효과와 38만2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또 이 단지에선 2038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혁신 신약 16개, 첨단의료기기 18개 이상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아주 매력적인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청사진을 현실화시키려면 몇 가지 단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당초 계획한 대로 단지 조성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30년에 걸친 장기 국책사업인 만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사업수행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국책사업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좌절되는 과정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신약이나 첨단의료기기 개발은 오랜 시간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적 지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후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여기에다 이번 사업은 투자비의 절반 이상을 민간에서 조달하기로 돼 있다. 따라서 기업·대학 연구소와 첨단 임상시험센터 유치 등 사전 정리작업을 통해 국내외 민간자본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대구 신서와 충북 오송이 복수로 선정된 만큼 두 지역의 연구 사업분야를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 비교 우위의 한 지역에만 연구 및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방지하는 합리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긍정적인 경쟁을 유도할 수 있고 중복 투자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성패는 유기적인 시스템 구축에 달려 있다. 핵심 인프라인 신약개발지원센터,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첨단임상시험센터를 중심으로 대학·병원·기업 연구소들이 연계해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의료산업의 활성화와 의료의 산업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이라는 첨단의료복합단지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은 최종 발표가 미뤄질 만큼 진통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에 대한 의구심이 퍼지고 지자체 간의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벌써 탈락한 후보 도시들이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는 그 후유증을 어떻게 최소화할지가 발등의 불이 됐다.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탈락 후보지의 의구심을 말끔하게 잠재우려면 그동안의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번 기회에 지자체들 간의 과도한 경쟁과 예산 낭비를 부추기는 현행 국책사업 선정 방식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 될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첫 걸음을 내디뎠다. 국민의 눈에는 지역이기주의에 눈 먼 지자체들 간의 싸움으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단순히 해당 지역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전체가 던지는 승부수의 하나다. 우리 전체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진부한 말처럼 들리지만 국가적인 역량 결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다.

조영래 경북대학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