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공기업 직원들 각종 판촉활동에 바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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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방자치단체.공기업 직원들이 최근 일반기업에 못지 않게 각종 판촉활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판촉대상은 골프연습장 이용권에서부터 땅.전철승차권.담배.신용카드.주유권 등 다양하다.

자신이 속한 지자체나 공기업 등의 어려워진 살림살이를 꾸리려니 싫든 좋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 공기업 임직원 = 광주시도시개발공사 직원 金모 (34) 씨는 요즘 친.인척은 물론 학교 선후배들을 찾아다니며 공사가 운영중인 골프연습장의 13만원짜리 월 사용권을 사달라고 통사정하고 있다.

하지만 골프 치는 사람도 드문 데다 그나마 할 줄 아는 이는 단골 연습장이 있어 아직 한 장도 팔지 못했다.

공사는 상무신도심 골프연습장 회원을 늘리기 위해 이달초 골프연습장 직원 9명과 시영아파트 건설.관리부서 직원 등 모두 87명에게 1백 상자를 칠 수 있는 13만원짜리 월 사용권을 팔도록 의무할당했다.

평사원은 2장, 과장급은 3장, 임원은 4장 이상을 연말까지 팔아야 한다.

한국토지공사 전남지사 직원 黃모 (37) 씨는 공사가 개발한 여수돌산지구의 단독주택용지 한 필지를 지난달 '울며 겨자먹기' 로 매입했다.

연말까지 미분양 용지를 최소 2필지 소화시켜야 하는데 사내엔 "실적이 없는 사람은 구조조정때 불이익을 받을 것" 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지사 관내 미분양 용지는 7개 지구 2천여 필지로 공사직원들은 이를 판촉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해 11월 개통된 대구지하철도 연간 적자가 3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최근 올 연말까지 직원 1명당 20장의 지하철 정액승차권 (1만원권) 을 팔도록 해 직원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 공무원 = 철도청의 광주역 등 지방 역 직원들은 1만원짜리 전철 정액 승차권을 팔아야 한다.

매표창구 직원들은 수원.영등포.서울행 열차승차권을 사는 사람들에게 열차와 연결되는 수도권 전철표도 함께 사줄 것을 사정한다.

고객과 직접 접촉할 수 없는 직원들은 서울 등 수도권의 친구.친인척들에게 전화로 부탁, 도와주겠다면 승차권을 속달우편으로 보내준다.

광주역 (직원 56명) 은 월 평균 8백여장을 팔고 있다.

개표담당 林모 (31) 씨는 "강제할당은 아니나 개인별 실적관리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20~30장씩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고 말했다.

또 전남해남군 공무원들은 출향인사들을 상대로 고향 담배를 팔고 있다.

실.과별, 개인별 할당은 없어졌으나, 상금.추진성과급 등 인센티브제도는 엄연히 존재한다.

연간 최우수 실적 직원에겐 2백만원을 주는 등 상위 5명을 상금과 함께 표창한다.

올들어 현재까지 1위인 고용 (高勇.55.삼산면사무소) 씨는 10만8백갑을 팔아 지난 9월 1백50만원의 추진성과급을 받았고 연말에 2백만원의 상금을 받을 예정.

강원도화천군.정선군 재무과 직원들도 내 고장 담배 팔아주기 운동에 정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광주시남구 구청.동사무소직원들은 광주은행 제휴카드인 '남구발전카드' 회원을 늘리고 주유권 판매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구청은 카드 회원 사용금액의 0.1%를 은행으로부터, 주유권 판매액의 2%를 LG정유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폐막된 경주엑스포를 개최한 경북도의 직원들도 1매에 1만원씩 하는 입장권을 직원은 20매, 계장은 30매, 과장은 50매씩 팔도록 할당받아 이를 파느라 홍역을 치렀다.

이찬호.이해석.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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