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개혁시위 정권뿌리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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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흔들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지난 5월 시위로 수하르토가 축출된 이후 반정부 세력이 군부와 점차 정면으로 맞서고 있어 사태가 더 심각하다.

말레이시아는 이제 막 구체제의 모순이 불거져 나오는 단계로 보이지만 시위가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 개최기간과 겹쳐 곱절로 타격을 받고 있다.

양국에 불어닥친 개혁의 바람이 얼마만큼, 어디로 향할지 짚어 본다.

◇ 인도네시아 = '16명 사망, 2백여명 부상' .인도네시아 진압군의 발포로 13, 14일 이틀간 자카르타에서 빚어진 참극이다.

수하르토를 몰아냈던 지난 5월사태때의 피해에 못지 않다.

14일 지방도시 메단에서는 대학생 5천여명이 한때 공항을 점거, 자신들을 수송할 자카르타행 비행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비비 대통령.위란토 국방장관 등 집권세력과 학생세력 및 메가와티.라이스 등 야당지도자들의 대결은 점차 가파른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사태는 세가지 점에서 지난 5월시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5월시위가 서민들의 약탈에서 시작된 폭동이었다면 이번에는 학생.지식인 계층이 먼저 들고 일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도네시아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이 '개혁' 을 외치면서 구체제의 전면퇴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군의 정치배제' 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들의 개혁요구는 '국민협의회 (MPR) 특별회의 거부' 로 이어지면서 사회 전체에서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수하르토 전대통령이 임명한 대의원들이 수하르토의 적자 (嫡子) 인 군부의 보호 아래서 진행하는 개혁입법은 본질적으로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는 군내부의 분열이다.

극도로 혼미했던 지난 5월에도 단결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13일 시위에서 해병대가 학생들의 시내행진을 보호해준 것은 군의 분열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 이었다.

당시 해병대 소속군인 3백여명은 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보호하다 안전부 소속 진압부대의 총격을 받고 중사 1명이 총상을 입기도 했다.

우군끼리 교전이 벌어진 셈이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 인도네시아 상권의 70%를 쥔 화교들의 태도변화를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시위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던 화교들이 학생편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 말레이시아 = APEC정상회의 주최국인 말레이시아에서도 마하티르 총리 퇴진과 안와르 전 부총리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경찰의 오토바이를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3천여명의 시민들은 15일 콸라룸푸르 시내 캄풍 바루 지역의 한 회교성당에서 기도회를 마친 후 '개혁' '마하티르 퇴진' '안와르 석방' 을 외치며 행진했다.

부근을 지나가던 차량들도 경적을 울려 시위를 지지하는 뜻을 나타냈다.

일부 시위대는 'APEC은 권력에 미친 마하티르로부터 우리를 구해달라' 는 구호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들이 묵고 있는 호텔을 향해 행진하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경찰은 17, 18일로 예정된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위가 격화되자 공중을 향해 위협사격을 하고 물대포를 쏘는 등 강경진압에 나섰다.

홍콩 = 진세근 특파원.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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