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미발표곡등 1백여곡 수록 '앤솔로지'음반발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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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팝계의 비틀스 상품화는 끝이 없다.

비틀스가 해산한 70년부터 지금까지 비틀스의 명곡을 갖가지 방식으로 짜깁기한 콜렉션이 수십종 나와있다.

최근에도 BBC방송에서 발굴한 미발표 더블음반 (94년) , 레논의 목소리를 더빙한 '신곡' 3곡을 포함한 6장짜리 '비틀스 앤솔로지 (95년)' 등이 요란한 화제를 뿌렸다.

비톨로지 (비틀스學) 란 학문까지 뿌리내리고 있으니 비틀스하면 염증을 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나온 '존 레논 앤솔로지' 는 '또 하나의 비틀스 상품화' 와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비틀스로 스타가 됐지만 비틀스를 부정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찾은 가수 레논의 꾸밈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비틀스를 떠난 레논은 폴 매카트니 만큼의 세속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매카트니가 9곡을 빌보드 정상에 올리고 1조원을 번 것과 달리 레넌은 단2곡을 1위에 올렸을 뿐이다.

그러나 레논의 솔로시절 음반들은 흥행여부와는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묘한 공명을 던진다.

그는 가수의 순수한 메시지가 굴절돼 전달되기 마련인 팝음악계 환경을 거부했고 좀더 솔직하게 팬들의 가슴에 육박하고 싶어했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직설적 노래, 철부지같은 음악외적 기행으로 그 욕망을 표현하던 그는 그때문에 미국정부에 미운 털이 박혀 추방명령을 받기도 했고 결국은 광적인 팬의 총에 쓰러졌다.

대중은 때로 그런 그를 미워했지만 아주 그런 것은 아니었고 그의 죽음으로 증오는 영원한 사랑으로 역전됐다.

레논을 상징하는 영원한 문구 - '이매진 (상상하라)' 이 동판에 새겨진 뉴욕 센트럴 파크의 '스트로베리 필즈 (딸기정원)' 에는 오늘도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4장으로 구성된 이 앤솔로지는 레논의 부인이자 정신적 '어머니' 인 오노 요코의 작품이다.

그녀는 레논의 미발표 녹음곡등 1백곡의 노래에다 집안에서의 잡담을 촘촘히 엮어 열정과 자기모순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사나이의 초상을 완성해냈다 (국내에는 이중 21곡을 모은 압축본 '원스 어폰 어 타임' 이 12일 발매된다) . 앤솔로지 1편 '애스콧' 은 비틀스로부터 독립하는 레논의 자아 성장을 뚜렷이 담고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 '워킹 클래스 히어로' ) 반전과 무종교의 이상향을 꿈꾸고 ( '이매진' ) 폴 매카트니의 상업성을 야유한다 ( '하우 두 유 슬립' ) . 레논이 급진적인 정치적 투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2편 '뉴욕' 과 요코와의 갈등, 정치에 대한 환멸, 음악에의 복귀를 담은 3편 '잃어버린 주말' 은 모순되면서도 인간적인 레넌의 행보를 잘 조명하고있다.

대부분 국내 팬들에게는 레넌의 마지막 삶이 기록된 4편이 가장 인상깊을 것 같다.

레논은 80년 5년간의 공백을 깨고 의욕적인 재기작 '더블 판타지' 를 낸 직후 집앞에서 피살됐다.

목전에 죽음을 앞둔 레논이 철모르는 아들 숀과 피아노 앞에서 장난치며 나누는 대화는 듣는이의 마음을 찌른다.

그 아들 숀은 올해 23세의 청년이 되어 아버지를 빼다 박은 음성으로 음반을 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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