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울린 채권사기 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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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청와대와 안기부가 고액 채권을 헌납하는 사람에게 국유지를 불하해 준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에서 정부가 발행할 수 있는 채권 총액이 제한됐기 때문에 정부가 채권을 추가로 발행하기 위해 이미 발행된 채권을 대량으로 회수하고 있다. "

사채시장 등에서 나돌았던 이같은 허황한 소문은 대부분 지하금융권에 기생하는 사기범들이 진원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적발된 채권전문 사기단들은 청와대 비서관.안기부 특명반 등을 사칭하고 기업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냈다.

중소기업인 宋모 (60.여) 씨에게 "정부가 매입한 고액 채권을 싸게 넘기겠다" 고 속여 2백억원을 가로채려 한 혐의로 구속된 박무남 (朴茂男.56).일남 (一男) 씨 형제가 대표적인 경우. 지난 93년 정보사땅 사기사건 때도 청와대 직원을 사칭했던 이들 쌍둥이 형제는 이번에는 청와대의 채권회수 특명을 받은 '청와대 실명해지 외부집행국장' 이라고 새긴 명함을 갖고 다녔다.

또 자신들의 업무에 협조하는 기업인들에게는 "금융실명제나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사면과 함께 5년간 세금을 면제해 준다" 는 가짜 '사면장' 을 만들어 갖고 다니기도 했다.

또 청와대 특별수석비서관으로 채권담당 위원장 행세를 한 이정세 (李正世.48) 씨는 "청와대 특별자금 중 2천억원을 대출해 주겠다" 고 모 대기업 회장을 속여 1년여간 계열사 사장으로 임명돼 월급과 사무실 등을 제공받기도 했다.

구속된 K은행 지점장 최병욱 (崔炳旭.52) 씨는 李씨에게 "건국채권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는 가짜 확인서를 써준 것 때문에 약점이 잡혀 본인 스스로 '청와대 금융담당보좌관' 을 사칭하는 등 사기 행각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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