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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년]1.1년전, 그리고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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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업주부 A씨 (38.경기도고양시일산구)가 지난해 10월 한달 동안 쓴 생활비는 1백85만5천1백60원. 그러나 추석까지 끼었던 올 10월에는 1백49만5천3백70원을 썼다.

은행 차장으로 있는 남편의 연봉이 5백만원 정도 깎인 데다 부업거리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남편이 매달 주는 생활비 1백50만원으론 부족했지만 식품회사 모니터 등 부업으로 저도 한달에 20만원씩 벌 수 있었기 때문에 돈 좀 더 쓰는 것이 문제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그런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어진 데다 똑같은 생활비를 주고 나면 자신은 용돈이 궁해 쩔쩔매는 남편을 보니 돈쓰기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지더군요. 그래서 지난해 이맘때는 네 식구가 강화도에 단풍놀이도 가고 나가서 소갈비도 사먹었는데, 올해는 여행은커녕 외식도 보쌈이나 삼겹살로 바꾸었어요. "

경조사비 등 각종 교제비도 많이 줄어든 부분. 이제는 가능하면 아주 가까운 친지 결혼식만 참석하고 매달 2만.4만원씩 내던 동창.친정식구 모임도 올해는 따로 회비를 걷지 않기로 했다.

가을이면 아이들에게 지어주던 보약도 올해는 A씨 자신의 치과치료비가 부담스러워 건너뛰었다.

A씨가 줄이기 힘들었던 것은 일반 식비. 초등학교 5학년.2학년이 된 아이들 먹성도 좋아지긴 했지만 야채.과일값이 올라 식비는 오히려 늘어났다.

소비태도가 바뀐 것은 대부분의 다른 가정도 마찬가지. 주부 노필섭 (40.서울동작구사당동) 씨는 IMF 이후 쇼핑 전에 꼭 냉장고를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남은 식품을 살펴본 뒤 구입할 품목의 목록을 작성해 집을 나서게 된 것. 쿠폰이나 행사.잡지 등의 무료 기회를 적극할용한다.

정경순 (46.경기도성남시서현동) 씨는 얼마전 시어머니 팔순잔치를 직계가족들만의 조촐한 모임으로 바꿨다.

화환도 시누이가 직접 꽃을 사다 만들었다.

이옥주 (40.경기도고양시화정동.여) 씨의 경우 이번 추석 때는 갈비세트 대신 현금 5만원을 차례비용에 보탰다.

사교육비나 여가활동비를 절약하려는 노력이 가족관계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은행원이었던 C씨 (40.인천시신현동) 는 최근 명예퇴직한 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퇴직 사실을 털어놓고 생활변화를 설명하자 "나도 도움이 되겠다" 며 신문배달을 시작한 아이를 보면서 새롭게 부자 (父子) 의 정을 느끼고 있다.

주부 L씨 (38.서울서초구반포동) 는 요즘 주말이 기다려진다.

골프를 즐기던 남편이 등산으로 취미를 바꾸면서 함께 산을 오르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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