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교사의 자존심을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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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우리 교육계에 대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찍이 유례가 없던 변화의 회오리다.

교육관계 사설을 10년째 써 온 필자로서도 변화의 폭과 속도가 너무 넓고 빨라 향방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구체적으로 보면 세 가지 대변혁이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

무시험 전형이라는 전혀 새로운 대입제도 실시와 교원노조 합법화, 그리고 교사정년 단축이라는 서로 대립적이고 갈등을 조장할 요소들이 뒤섞여 진행중이다.

변혁의 내용을 하나씩 짚어보자. 제일 큰 변화가 입시개혁이다.

이 땅에 근대식 대학이 세워진 이래 사용해 왔던 '시험성적 = 대학입시' 라는 잣대가 전혀 쓸모없게 된다.

학교생활만 제대로 하면 교사가 학생의 적성과 인성을 파악하고 학생의 평소 학교생활과 성적 등을 종합해 정리해 두면 대학이 이를 참고해 선발하는 것이다.

수십년래 온갖 방식으로 개혁코자 했지만 실패했던 학교 교육개혁이 이대로 정착만 된다면 성공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잘되면 충신이고 못되면 역적이 되기 십상이다.

입학의 공정성을 누가 어떻게 믿을 것인가 하는 불안이 사회 전체에 가득하다.

시험지를 학원에 빼돌리는 일부 교사가 있고, 정부 감독이 조금만 소홀하면 부정입학을 다반사로 하는 대학이 남아 있는데 무엇을 믿고 학부모는 뒷짐지고 있을 것인가.

학교에 대한 믿음이 없다.

학교를 믿지 못하고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사회풍토에선 무시험 전형제가 성공하기 어렵다.

학교에 대한 믿음을, 교사에 대한 신뢰를 흔들 또다른 요인이 잠복중이다.

교원노조 문제다.

지난 노사정위에서 교원노조의 합법화가 이뤄졌다.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교원노조는 노동부에, 교원단체는 교육부에 등록해 복지후생과 교육정책에 관한 단체 교섭권을 각기 갖는다.

가령 이렇게 된다.

지금 논쟁중인 교원정년 단축문제를 놓고 교원노조와 노동부, 한국교총과 교육부가 맞붙었다고 치자. 자신들의 경제적 현실문제를 눈앞에 두고 치열한 대결은 불을 보듯 훤해질 것이다.

여기에 벌써 한국노총이 교원노조를 결성하겠다고 운을 떼고 있으니 교원노조가 우후죽순처럼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교원노조간 세 (勢) 불리기와 힘겨루기가 어떤 형태로든 진행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차분한 마음으로 학교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노조간 힘겨루기로 치달을 학교현장을 보면서 학부모들은 교사들을 믿고 따를 것인가.

세번째 제기된 교육계 내부의 당면 혼란이 교사의 정년단축이다.

65세 정년을 60세로 앞당기자는 정부 방침이다.

나 자신 오래전부터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가 되는 현행 교원정년제 철폐를 주장해 온 사람이다.

능력에 따라 승진하고 능력이 모자라면 퇴출시키는 여과장치가 있어야 교원능력이 살아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남의 말 하기는 좋다.

이게 자신이 문제가 되면 그렇게 이성적으로 풀리지 않는다.

가뜩이나 어려운 생활여건에 아무런 경과조처 없이 하루 아침에 5년 남은 임기를 그만둬? 반대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어제 발표된 교원상대 여론조사를 보면 현정부의 교원정책에 대해 교사 68%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여기에 교단을 떠나고 싶다는 교사가 76.6%를 차지하고 있다.

교사 자신의 직위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학교교육을 교사들이 과연 실시할 수 있을 것인가.

앞서 거론한 세 가지 대변혁의 성패 모두가 교사들의 노력과 합심 여하에 달려 있다.

새로운 학교문화를 창조하고 입시개혁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지덕체 인성교육을 펼치면서 교원의 복지후생과 교원정책에 대해 정부와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고 교사 스스로 개혁과 재교육을 통해 부단한 자기변신을 거듭해야 이룰 수 있는 개혁인 것이다.

교사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면서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안고 있다.

이 교사단체가 개혁정책 자체에 불만을 품고 앙앙불락하면서 노조의 세불리기와 힘겨루기로 나아가고 스스로 자숙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자조하며 될대로 돼라는 식으로 방관자적 자포자기에 빠질 때 우리 교육계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개혁의 주체는 대통령도 아니고 교육부장관도 아니다.

바로 교사들 자신이다.

교사를 욕하고 교사를 핍박하는 정책으로서는 개혁을 이룰 수 없다.

교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쪽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줘야 교사들 스스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출 수 있다.

교사들의 자존심과 긍지를 살리는 정책대안이 시급하다.

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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