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포 '수용소 동지'미군 유해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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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가 아사 (餓死) 한 미군 포로의 시체를 묻었던 청년이 47년 만에 유해 발굴에 나선다.

주인공은 '재미 이북도민 고국방문단' 1백15명과 함께 이북5도청의 초청으로 3일 입국한 유용수 (柳龍秀.67.LA거주.남가주 미수복 강원도민회장) 씨. 柳씨는 방문단과 함께 판문점 방문.관광 등을 마치고 일행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남아 오는 9일 강원도철원군동송읍사요리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에서 미군의 유골 발굴 작업을 편다.

4일 일행과 함께 경기도파주시 통일전망대를 찾은 柳씨는 "평생 실향의 한을 안고 살아왔는데 가족을 이국땅에서 잃고 주검조차 거두지 못한 미국인 가족들의 아픔은 오죽하겠느냐" 고 유골확인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柳씨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미군조종사와 인연 아닌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4월. 50년 12월 철원고급중학교 3학년 재학중 인민군 징집을 피해 토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발각돼 총살형을 선고받았으나 담임선생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총살을 면한 채 철원군 노동당사 근처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던 柳씨의 방에 어느날 포로가 된 미군조종사 2명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과 대화는커녕 물탱크 4개를 개조한 수용소는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두 미군의 대화와 가끔씩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수용소 식사는 하루나 이틀에 한번꼴로 들어오는 죽이 전부. 결국 허기를 이기지 못한 미군 1명은 2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柳씨는 간수와 함께 수용소 옆 속칭 새우젓고개 기슭에 그를 묻었다.

柳씨는 그해 7월 북한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던 중 탈출했으며 함께 있던 다른 미군 1명은 그대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월남한 柳씨는 동두천에 정착했다가 70년 파라과이로 농업이민을 간 뒤 8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골 발굴을 위해 이미 국방부와 관할부대의 협조 약속을 받아놓은 柳씨는 "군번과 함께 묻었기 때문에 그 가족도 찾을 수 있을 것" 이라며 "평생 부담이 됐는데 이제야 마음의 짐을 덜게 됐다" 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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