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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람·음악 어우러진 콘서트 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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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프랑스 휴양도시 디나르에선 매년 8월 음악축제가 열린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이 음악제는 재불 피아니스트 백건우(63·사진)씨가 총괄하고 있다. 15년째 이 행사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백씨는 이 음악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창기 동호인들의 잔치 수준이던 이 행사는 이제 세계적 연주가들이 찾는 유럽 유수의 음악제로 자리 잡고 있다.

8일 현지 포르 브르통 공원에서 20주년 기념 음악제의 개막 연주회가 열렸다. 백씨는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크리스토프 펜데르츠키와 공연했다. 펜데르츠키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부활’이었다. 37분간에 걸친 연주가 끝나자 2000여 명의 청중은 5분여 동안 기립 박수를 보냈다. 백씨와 펜데르츠키는 다섯 번이나 퇴장과 인사를 반복해야 했다. 디나르 시의 문화국장은 “백건우·윤정희 부부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디나르 음악제를 오늘까지 이끌어왔다”며 현장에서 감사 인사를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백씨를 만나 음악제 감독을 맡게 된 사연과 근황을 들어봤다.

-얼마 전 르피가로, 텔레라마 라디오 클라식 등 프랑스 언론들이 디나르 음악제를 ‘빼놓아서는 안 될 음악축제’ ‘맞춤형 음악제’ 등으로 잇따라 소개했다. 시골 소도시 음악제의 수준을 이렇게 끌어올린 힘은 뭔가.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들을 초대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올해도 러시아와 중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실력 있고 활동도 왕성한 분들을 모셔왔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잔치였지만 이제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됐다.”

-디나르 음악제 감독을 15년째 하게 된 배경은.

“음악을 좋아하는 스테판 부테라는 젊은 친구가 처음 디나르 음악제를 열었다. 초창기부터 나를 초대했고 음악 자문도 했다. 그래서 음악제 컨셉트 형성에 내 의견을 잘 반영했다. 그러다 몇 년 뒤 부테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청해왔다. 음악제의 재정난도 심각했고 할 일도 너무 많았지만 순수한 음악에 대한 사랑을 높이 사서 고민 끝에 음악감독직을 받아들였다.”

-디나르 음악제만의 특징은 뭔가.

“자연과 사람·음악이 만나는 콘서트를 추구한다. 아티스트들의 선정과 공연 장소 등 모든 것을 이런 점을 기초로 잡았다.”

-음악 감독이 하는 일은 뭔가.

“해마다 음악회의 컨셉트를 잡는 일이다. 올해는 주최 측과 상의해서 ‘해피 버스데이’로 했다. 음악제가 스무 살을 맞은 것을 자축하자는 의미였다. 그래서 2007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3위 입상자와 중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베라 추 등 실력 있는 연주자를 대거 초대했다. 20년간 자원봉사를 해온 음악애호가들이 공연하는 무대도 만들었다.”

-음악제 기간에는 소도시 디나르에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들었다.

“디나르는 10여 년 전만 해도 바닷가의 소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음악이 도시를 바꿔놓았다. 음악축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시 당국은 디나르의 컨셉트를 문화도시로 잡았다. 470개 도시 건물을 문화유적으로 지정해 보호했고 꽃과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지금은 보는 것처럼 아름다고 화사한 분위기다. 음악과 자연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름철에는 관광객이 꽤 많다.”

-나이가 60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연주는 젊은 시절 못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디나르에 오기 직전에 멕시코에서 연주를 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지휘자 엔리케 바티스가 예전부터 초청 의사를 밝혀 이번에 가게 됐다. 그 직전에는 독일에 가서 녹음 작업을 했다. 5월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서 열리는 라흐마니노프 페스티벌에 초대받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전곡과 파가니니 랩소디를 연주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보조의자를 놓고 입석까지 들어찼다. 라흐마니노프의 나라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어 자랑스러웠다. 9월에는 이탈리아 라스칼라에서 공연이 있다.”

-공연 때나 연습 때 나이를 느끼지 않나. 손가락이 굳는다고들 하는데.

“물론 테크닉 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 손가락도 그렇고….그러나 음악을 이해하는 힘이 깊어진다. 음악을 알고 내 것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젊을 때보다 나은 점도 있다.”

-이번에 오프닝을 함께한 펜데르츠키와는 여러 번 공연을 했는데.

“10여 년 전 폴란드 공연 때 펜데르츠키가 내 음악을 들은 뒤에 함께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 뒤 2004년에 마드리드에서 펜데르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부활’을 함께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호흡이 잘 맞았고 서로 음악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 뒤 몇 차례 더 연주를 했다. 부활은 9·11 테러 뒤 충격을 받은 그가 예술가로서 악의 세계와 맞서 싸우겠다며 만든 곡이다. 격정과 종교적인 색채, 아름다움이 함께하는 훌륭한 곡이다.”

 디나르=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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