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MB의 개각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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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8·15 개각설은 다시 이달 말 개각설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사소한 일도 이것저것 재다 보면 끝이 없는 법인데, 국가의 중책을 맡길 인재 고르는 일이니 오죽하랴. 이해는 가지만 걱정은 남는다. 흔히 ‘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인사를 미루는 것은 만사를 미루는 게 된다. 개각설이 나온 지 벌써 두 달이 흘렀다. 딱히 한다, 안 한다 소리도 없이 차일피일 시간만 가고 있다. 벌써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당·정·청은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있다.

모 관변 기관의 장은 하라는 구조조정 일은 안 하고 국무회의 소식, 특히 대통령의 발언만 일자일언을 수소문하는 게 일이라고 한다. 어디 모 기관뿐이랴. 부처마다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장관이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부처의 술렁거림은 도를 지나칠 정도다. 입각 가능성이 점쳐지는 여당 의원들의 몸놀림도 분주하다. 청와대 비서관 중엔 이미 옮길 자리를 봐놓고 짐을 싼 채 인사가 이제 날지 저제 날지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이래서야 일손이 제대로 잡힐 턱이 없고 나랏일이 신나게 굴러가기 어렵다.

대통령도 이번 인사만은 꼭 잘하고 싶을 것이다. ‘형님 인사’며 ‘S(서울시)라인 인사’,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비아냥까지 인사마다 좀 구설에 시달렸는가. 그 후유증이 광우병 사태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를 불렀다는 지적도 아팠을 것이다. 게다가 내년 6월이면 지방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정권은 후반기로 넘어간다. 개헌론이 불붙고 정국이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봐서 이 정권이 업적 남기기에 올인할 수 있는 시간은 잘해야 1년 남짓이다. 이리저리 잴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개각 방정식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충청 총리설에 박근혜 총리설까지 왔다갔다 하더니 친박·친이 논쟁이 불붙다가, 여당 의원 입각론까지 가세했다. 난마(亂麻)처럼 얽혀 해법이 안 보일 정도다. 그럴수록 ‘빠른 칼(快刀)’이 필요하다. 빠른 칼을 쓰려면 목표부터 분명히 정해야 한다. 국면 전환용인지 내부 화합용인지, 아니면 실무형인지.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실무형 개각이다. 국면 전환용은 이미 때를 놓쳤다. 내부 화합은 굳이 개각을 통할 필요가 없다. 친이·친박을 골고루 섞는 인사로 화합이 이뤄질 만큼 두 진영 사이의 골이 얕아 보이지도 않는다. 차라리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게 빠르고 더 효과적이다. 대통령의 정치력은 그럴 때 필요한 것이다.

실무형 개각은 방향성이 뚜렷해야 한다. 이왕 정권의 화두를 ‘중도실용’과 ‘서민’으로 정했다면, 그쪽으로 올인하는 게 좋다. 인물도 그런 쪽을 골라야 한다. 필요하면 좌파 지식인에게 장관 자리를 내줄 각오도 해야 한다. DJ 정권 초기 인사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DJ 정권은 공동정권 자민련과 나눠 인사를 하다 보니 ‘내 맘대로’가 잘 안 됐다. 자민련은 경제부처 몫을 챙겼는데 주로 우파 관료들을 썼다. 당시 정책기획수석이었던 김한길 전 의원은 “코드에 안 맞는 관료들을 장관에 앉힌 것이 DJ 정권의 실수였다. 관료들은 전문가입네, 시장이 중요합네 하며 정권의 철학을 교묘히 깔아 뭉갰다. 차라리 당의 의원들이 경제 부처를 점령했어야 했다”며 두고두고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일반의 평가는 좀 다르다. 우파 관료들이 되레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큰 힘이 됐다는 쪽이다. 정권에 좋은 인사와 일에 좋은 인사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좋은 인사는 소통에도 필수다. 이 정권이 입에 달고 살되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소통인데, 소통 그거 별거 아니다. 인사 잘하면 절로 된다. 떡볶이에 어묵이나 백 마디 라디오 연설보다 국민은 인사로 더 대통령과 소통한다. 친해서인지, 능력 위주인지, 지역 챙기기인지 국민은 단박에 안다. 백 번 서민을 외치는 것보다 한 번 잘된 인사가 낫다는 얘기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