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퀴즈영웅 신정한군의 ‘책갈피 공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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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KBS <퀴즈 대한민국>에 만 11세의 최연소 퀴즈영웅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경북 고령의 작은 마을에 사는 신정한(12·고령초5)군. 신군은 퀴즈왕이 된 비결을 묻는 각종 인터뷰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답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사교육 한 번 받지 않은 신군은 과연 어떻게 책을 읽었기에,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했기에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퀴즈문제를 술술 풀어낼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책 선물을 줄 때가 제일 좋아요.” 독서가 취미인 신군이 지금까지 읽은 책은 무려 3천여 권. 독서 방법도 특이하다. 책을 한꺼번에 여러 권 펼쳐놓고 읽는 일이 흔하다. 책을 읽다 모르는 것이 나올 때마다 이 책,저 책을 꺼내 같이 읽다 보니 방바닥은 늘 책이 널브러져 있다. 때로는 책을 읽다가 중얼거리며 컴퓨터로 달려가기도 한다. 책에 나온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찾아보기 위해서다. 신군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저만의 공부방식인데, ‘책갈피 공부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신군은 책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책갈피로 표시를 해두고 곧장 참조할만한 다른 책이나 인터넷 자료를 뒤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궁금증이 해결되면 다시 원래 읽던 책으로 돌아가 뒷부분을 읽어나간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나중에 ‘이 내용을 어디서 읽었더라?’하는 의문이 들면 예전에 책갈피로 표시해둔 부분을 펼쳐본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미다스 왕(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바꿔버리는 황금손으로도 유명하지만 당나귀 귀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야기를 읽다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신라 경문왕(‘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의 주인공) 설화로 옮겨오고 다시 경문왕 이야기가 실려 있는삼국유사를 읽은 뒤 그리스로마신화로 돌아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책 읽기, 이것이 바로 척척박사 신군의 독서비법이다.

일반인의 경우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이것저것 하도 많은 자료들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질 수가 있다. 이에 대해 신군은 “책을 읽고 나면 워크북과 비밀노트에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한다”고 귀띔했다. 정리하기를 통해 호기심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든다는 것. 월드컵 본선 진출국 정보, 미승인국가, 원소 주기율표 등 한꺼번에 외우기 어려운 내용들은 반드시 노트에 기록한다. 일례로 <퀴즈 대한민국>에서 정한이가 푼 마지막 문제의 답은 미국과 네덜란드였는데 힌트는 ‘푸에르토리코가 이 나라의 자치령’이었다. 신군은 마침 대회에 나가기 몇 주 전에 비밀노트에 미승인국가 목록을 정리하면서 푸에르토리코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이것이 기억에 오래 남아 퀴즈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삼아 자유롭게 공부하는 신군은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국리더십센터 조형훈(36)팀장은 “주어진 범위 내에서 수동적으로 암기하는 학생들은 그것을 금방 잊어버리지만 정한이같이 스스로 지식을 쌓고 성취감을 느끼는 아이들은 공부한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물론, 공부를 재미있어 한다”고 말했다. 공부가 즐겁다는 신군은 학교시험에서도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

신군이 퀴즈영웅이 되기까지는 부모님의 도움도 컸다. 어머니 서정희(41)씨는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 주려고 신군을 생후 7개월 때부터 서점에 데려가고 책 놀이를 했다. 책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잘 읽었는지를 확인하는 워크북 역시 모두 서씨가 자필로 적어 손수 만든다. 그는 “아이가 질문을 하면 답을 곧바로 알려주기보다 ‘찾아보고 엄마에게도 설명해 줄래?’라고 부탁해야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신상진(42·고령시)씨는 주말이면 신군과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찾아 다니며 현장 공부를 한다. 이들 부자가 박물관에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이드북을 구매하는 일. 신씨는 “유물들을 단순히 눈으로 죽훑어보는 것은 눈요기밖에 되지 않는다”며“가이드북과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함께 읽으며 아이가 책에서 본 내용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머릿속에 넣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


[사진설명]
세상이 궁금하고 재미있는 것 투성이로 가득 차 있다는 신정한 군은 얼마 전 자신의 공부비법을 담은 『책갈피 공부법』이란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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