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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대기업 파업…죽어나는 협력업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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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코오롱 노조가 파업하기 전에는 하루 20t의 원사를 가공해 납품했는데 요즘에는 하루 5~6t을 생산하기도 힘듭니다. 벌써 코오롱의 파업이 43일째를 맞고 있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경북 구미시 구미1공단에 있는 A화섬. 대기업인 코오롱의 협력사인 이 회사 김모(55)사장은 4일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 업체는 코오롱이 생산하는 원사를 받아 옷감을 만들 수 있는 실로 가공해 다시 코오롱에 납품하고 있다. 코오롱에서 가공 물량을 100% 공급받고 있어 이번 코오롱의 장기 파업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현재 대당 7억원이 넘는 원사 가공기계 9대 중 3대만 가동하고 있어요. 올 초 50명에 달했던 직원도 지금은 30명밖에 남지 않았죠. 이 중 19명은 휴직 상태입니다. 퇴직 근로자 대부분이 생산직 근로자로 일했는데 다른 직장을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김 사장은 "다른 중소기업도 비슷한 처지겠지만 요즘은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라며 "원청업체의 파업이 지속될 경우 올해 안에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달 들어 노동부 직업안전센터에 휴직 직원들의 급여에 대한 긴급 지원까지 요청했다. 월급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근무하는 근로자들도 한달 평균 일하는 날이 15일이 채 안 된다. 이 회사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월 130만~140만원 선. 중소기업이라 변변한 복지 혜택도 없는 실정이다.

생산직 직원인 이모씨는 "같은 공장 근로자라도 대기업 근로자는 연봉이 훨씬 많고 근무 여건도 좋은데 파업이라는 강경 투쟁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대기업에 의해 생사가 갈리는 중소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배려를 조금은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 업체처럼 코오롱에서 원사를 100% 공급받아 가공했던 B사의 경우 현재 공장 문을 닫고 전면 휴업에 들어갔다.

이 같은 상황은 GM대우의 협력사인 중소 납품업체들도 비슷하다. GM대우차는 지난달 9일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최근 노사 양측이 임단협안에 잠정 합의했으나 노조원들의 찬반투표에서 부결돼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GM대우차는 이번 파업 사태로 3500대 정도의 생산 차질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GM대우차의 부품 협력사 모임인 '협신회' 회원사 C기계의 이모(58)사장은 "파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납품 업체들은 원청업체가 보는 피해의 두배.세배 이상 타격을 받는다"며 "과거 대우차 시절에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각해 노사가 제발 한 걸음씩 양보해서라도 조속히 임단협을 타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LG칼텍스정유는 원유를 가공해 휘발유 등 완제품을 만드는 업종 특성상 협력업체에서 조달하는 원자재나 부품이 많지 않아 이번 파업에 따른 협력업체 피해도 크지 않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LG정유 여수 공장의 전기 공사와 점검 등을 맡고 있는 협력업체인 D사의 경우 파업기간에 인건비 등 3000여만원의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하루 평균 10여명을 투입해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기시설 정비.점검 등을 하는데, 파업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돼 작업을 못한 기간의 인건비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상으로 구입해 놓은 전기설비 부품 등 각종 자재 값 2000여만원을 결제하기 위해 급전을 구하는 바람에 비싼 이자도 물어야 했다.

이 회사처럼 LG정유에 등록된 170여 협력업체의 피해액은 현재 2억여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공장 주변의 상인들은 파업으로 지역 상권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내 화학회사들의 간접적인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LG칼텍스정유의 생산 차질로 국제 플라스틱 원료 값 등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익재 기자, 여수.구미=서형식.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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