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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의 길' 택한 한국인 미국유학생, 에이즈 치료 길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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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박사과정 3년차인 송지준(30)씨는 어릴 때부터 생물학과 건축공학에 흥미를 가졌다.

서울대 생물학과에 입학해 단백질의 구조를 해석하는 '구조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뒤 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에 잠시 흔들렸지만 구조생물학 분야에서 1인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시 다지고 2001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 과학도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제 개발의 해법을 찾아냈다. 바이러스를 증식하는 주범인 리보핵산(RNA)을 제거할 수 있는 단백질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송씨의 연구 결과는 지난달 29일 세계 최고의 과학학술지'사이언스'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됐다. 송씨는 이 논문의 주 저자에 올랐다. 주 저자는 공동연구를 한 연구원들 가운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 사람으로, 여러 명의 저자 가운데 맨 앞에 나온다. 송씨의 논문은 9월 3일자 사이언스에 실릴 예정이며, 표지 논문으로 실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송씨는 세포 내 RNA의 기능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을 처음으로 찾아냈다. 일반적으로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에서 중간 매개체 역할인 RNA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반응을 통해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이 생산된다. 5~6년 전부터 과학자들은 RNA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에 중요한 조절기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송씨는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고(古)세균'이라는 박테리아에서 이 조절기구의 핵심 단백질인'아거노트(Argonaute)'를 순수하게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또 아거노트가 세포 안에서 만들어진 각종 RNA를 잘라내는 일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내는 등 아거노트의 구조를 규명했다.

송씨는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2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 분야에서 세계 10여개 유수한 연구소와 피 말리는 경쟁을 했던 일이었다"고 말했다. RNA 생성조절을 수년간 연구해온 서울대 김빛내리(생명과학부) 교수는 "스포츠에 비유하면 '만루홈런'에 해당하는 엄청난 성과"라고 평가했다.

송씨의 연구 결과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치료 방법으로 쓰일 수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RNA로 이뤄져 있어 아거노트에 의해 선별적으로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암유전자를 인식하는 마이크로 RNA와 아거노트를 함께 주입하면 발암유전자의 기능만을 골라 제거할 수도 있다.

뉴욕에 위치한 콜드스프링하버는 DNA 구조를 풀어 노벨상을 받았던 제임스 웟슨 박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생명과학 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아거노트 단백질에 대한 특허를 내고, 앞으로 이를 이용한 에이즈 및 암 치료제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올해 말 박사학위를 받는 송씨는"단백질을 분리하고 구조를 풀어내는 일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단히 고된 작업"이라며 "그러나 세계의 두뇌들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짜릿함이 있기에 '이공계의 길'을 선택한 것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 바로잡습니다

8월 5일자 1면 '한국인 미국 유학생 에이즈 치료 길 찾았다' 기사에 대해 서울대 김빛내리(생명과학부)교수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지적해왔습니다. 김 교수가 기사에서 말한 "스포츠에 비유하면 '만루홈런'에 해당하는 엄청난 성과"라는 부분 가운데 '스포츠에 비유하면 만루홈런'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자가 '그럼 이 말이 왜 취재수첩에 적혀 있을까'곰곰이 복기해 보니, 기사의 주인공인 송지준씨가 다른 과학자들에게서 들었다는 얘기를 받아 적은 것이었죠. 실수였습니다. 인용 부호를 사용할 때는 말한 그대로를 옮겨야 하는데 기자가 발굴한 단독 기사 작성에 마음이 들떠 잠시 헷갈렸나 봅니다. 김 교수는 "송씨의 연구 결과는 바이러스와 암 치료 등 응용 분야가 넓은 대단한 성과임에 틀림없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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