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광장에서 의회로 가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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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부터 광주에서 일본 문화와 경제정보 등을 소개하는 대규모 '재팬 위크 (일본주간)' 행사가 주한 일본 대사관 주최로 개최되고 있다.

이런 행사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지금, 왜 광주에서? 일본 대사관의 설명에 따르면 "호남은 예향 (藝鄕) 이며,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고향이고 더욱이 한국의 낙후지역으로서 일본과의 문화.경제교류를 통해 이 지역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라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배경에는 '한국에 있어서 사회적 불만은 때에 따라 반일 (反日) 감정의 폭발로 나타난다' 는 나름대로의 분석도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호남의 한.일 우호친선행사는 이 지역의 대일 (對日) 감정의 원만한 화합을 위한 기대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 주한 일본기자들 사이에서는 반농담으로 "대단히 멋진 행사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에 있어 뭔가 부족한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소리도 일부 있다.

왜냐 하면 김대중정권 아래서라면 여당의 아성인 호남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경을 써야 할 곳은 영남지역이 아닌가.

특히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에서 공업지대인 영남의 민심이야말로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낙후지역이라는 배려라면, 오히려 부산쯤에서 '재팬 위크' 를 개최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상은 한국 정세를 바라보는 외국인기자의 관점의 하나다.

여기에 하나 더 이야기하자. 알다시피 서울 여의도광장이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나려 하고 있다.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어 녹지로 조성된다.

우리 외국인 기자들은 여의도를 '서울의 맨해튼' 으로 불러왔는데 그 여의도광장이 센트럴 파크로 변한다는 것이다.

기쁜 소식이다.

솔직히 나는 전부터 여의도광장을 없애자는 쪽이었다.

이유는 수도의 한가운데 그런 넓은 광장이 있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의 상징 같아 보기에 안 좋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베이징 (北京) 의 '천안문광장' , 그리고 평양의 '김일성 광장' 이 그러하듯이 민주화시대에 그런 광장은 필요없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1백만집회가 열려 온 여의도광장은 한국 정치에 있어 가두정치의 상징이었다.

절대적이고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그것을 직접적으로 견제하려는 군중집회.데모라는 과거 한국정치의 격돌구조에서 여의도광장은 필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10년인 지금, 그 여의도광장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에 있어 전통적인 가두정치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두정치를 대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의도광장의 맞은 편에서 벌어지는 의회정치야말로 그 역할을 맡아야 한 다.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이제부터 가두데모가 아닌 의회의 몫이다.

그런데 여의도광장 맞은 편 국회의사당은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잘 보이지 않는다.

의원내각제로의 이행을 지향하는 '국민정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존재감이 너무 약한 것 같다.

이런 의회정치로는 국민이 의회정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무력한 의회정치라는 현상황은 어쩌면 내각제로의 전환을 바라지 않는 세력의 음모.모략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될 정도다.

한국과 같은 강력한 대통령제 정치시스템 아래서는 의회와 언론이 대통령 권력에 대한 건전한 견제세력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현재의 의회정치의 미흡함은 우선 다수야당에 대한 집권당의 무리한 다수파공작에 의해 초래됐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기에는 의회의 전문적인 역량이 너무 부족하다.

'고함정치' 만으로는 내각제로의 이행이 어렵지 않을까. '가두정치' 시대에는 정치가는 전문적 지식이 없이도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

군중을 향해 고함을 외치고 주먹을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의회정치' 시대에 정치인들은 정책으로 싸워야 한다.

특히 경제 주도적인 국제화시대에는 전문 지식이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다.

아니,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다.

IMF사태는 실은 한국정치가 너무나 경제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한국정치는 아직도 과거지향적이고, 정치과잉인 것 같다.

세계정세는 경제중심으로 미래지향적으로 전개되는데도 한국정치는 여전히 과거 일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일관계는 金대통령 덕분에 드디어 '과거로부터 탈출' 에 한발짝 나섰지만 한국정치는 언제 미래지향으로 갈 것인가.

구로다 가쓰히로(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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