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에 미군기지 추진 … 주변 좌파국가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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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콜롬비아는 남미 민중의 배신자다.”(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콜롬비아가 미국과 추진 중인 군사기지 임대 협상 때문에 남미가 들끓고 있다. 대부분 좌파 정권인 남미의 각국은 “미국이 남미 패권을 노린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열리는 남미국가연합(UNASUR) 정상회의는 ‘콜롬비아 성토장’이 될 전망이다. 콜롬비아는 이 때문에 아예 회담에 불참하기로 했다고 AFP·BBC 등 외신은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군기지 문제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실제론 올해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남미에 화해 제스처를 보인 이후 남미의 반미 정서가 줄어들자 위기감을 느낀 집권 좌파 정권들이 세력 결집에 나섰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올 10월부터 남미 각국에선 잇따라 대선이 실시될 예정이어서 좌파 정권들이 미리 ‘집안 단속’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군, 남미 내 군사 활동 확대=콜롬비아는 4월부터 미국과 군사기지 임차 협상을 벌여 왔다. 하지만 지난달 16일에야 “타결이 임박했다”며 협상 내용을 공개했다. 핵심은 마약 조직과 좌익 반군 게릴라(FARC) 소탕을 위해 미군 지원 병력에 해·공군 기지 7곳을 개방한다는 것이었다. 미 공군이 콜롬비아 중부의 팔란케로 공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작전 반경이 크게 늘어난다. 재급유 없이 남미대륙 절반을 커버할 수 있다.

또 현재 300명을 밑도는 미군 주둔 병력을 800명 이내로 증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미국의 남미 내 군사 활동은 좌파 정부들 때문에 계속 위축돼 왔다. 2006년 취임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에서 미군기지를 모두 쫓아내고, 외국군 기지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헌법까지 고쳤다. 에콰도르에서도 2007년 코레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군기지 임차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미국은 남미의 핵심 거점이었던 에콰도르 만타 공군기지 이용계약 만료(7월)를 앞두고 콜롬비아와의 새 협정 체결을 서둘렀다.

그러나 오바마는 7일 남미계 언론사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콜롬비아와의 기존 군사협정을 업데이트한 것일 뿐 (새)기지를 만들거나 병력을 대규모 증파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남미 좌파 전선 붕괴 우려=남미의 대표적인 극좌파 국가인 베네수엘라·볼리비아·에콰도르 등은 가장 격렬하게 콜롬비아를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FARC는 최근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소탕을 위해 굳이 미군기지까지 둘 이유가 없다”며 “미국의 군사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특히 부시 전 정권 때는 ‘공동 대항 전선’ 구축에 성공했던 남미 좌파 블록은 오바마 집권 이후 이 전선이 무너질까 걱정이다. 모랄레스가 4일 “남미에서 다시 우파가 집권할까 우려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좌파이면서도 중도·실용주의 성향인 브라질·칠레·파라과이는 원칙적으로 “콜롬비아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우파 국가인 페루는 콜롬비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게다가 남미 각국은 줄줄이 대선을 앞두고 있다. 우루과이(10월)를 시작으로 볼리비아·칠레(12월), 브라질(2010년), 아르헨티나(2011년)의 선거가 이어진다. 이 때문에 남미 좌파 블록은 10일 남미국가연합 정상회담을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콜롬비아 문제를 집중 거론함으로써 반미 여론을 자극하고 좌파 간 결속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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