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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속내 제대로 알고 접근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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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1세기의 중국은 과연 우리의 희망인가? 이는 지난 몇 년간 고조된 중국 열기를 느끼면서, 그리고 곳곳에서 표출되는 희망적 예언을 들으며 필자가 가졌던 생각이다. 희망은 이뤄질 수도 있고 많은 상처를 남긴 채 좌절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객관적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희망의 범위와 수위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켜 가는 것이다. 최근 국민적 관심이 모이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짚어봐야 한다.

무엇이 중국으로 하여금 먼 옛날의 변방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재해석하게 하는가? 여기에는 단순한 역사 해석에 앞서는 정치.경제.안보적 요인이 내재돼 있다. 우선 현재 중국은 정치적 과도기에 있다. 기존 사회주의 이념.체제만으로는 정권유지에 필수적인 '정통성'과 '효율성'을 더 이상 확대 재생산하기 어렵다. 더욱이 과거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 것이 급선무였던 때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근엄한 지시와 정치적 결단이 체제 내 갈등을 상당 부분 해결해 주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는 체제전환기에 지도부와 인민을 결합시켜 줄 대체 이데올로기로서 '중화' '민족'에 집착하고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는 이미 중국의 대내외정책 전반에 지나칠 정도로 투영되고 있다.

경제사회적 요인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소위 동북지역을 재건하자는 '진흥동북(振興東北)'을 기치로 추진되고 있으며, 그 핵심은 과거 선도적 공업기지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개혁개방 과정에서 소외되고 낙후된 이 지역의 경제적 기반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사실 선양(瀋陽).창춘(長春)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의 공업기반은 중공업 중심의 대형 국유기업이라는 특성상 사회주의시장경제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대부분 저효율.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애물단지 국유기업으로 전락했다. 더욱이 이 지역의 수많은 노동자.농민은 재빠르게 변신한 중국 동남연안 지역의 신흥계층에게 사회주의체제 주력군으로서의 실질적 지위와 자부심마저 빼앗기고 시장경제의 야속함과 중앙의 편향된 정책을 성토해 왔으며, 이는 중국 지도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로서는 동북지역의 공업적 기반을 재건하고 경제사회적 안정을 도모해야 하며, 동북공정의 추진 배경에는 바로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즉 중국 지도부로서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구성원들을 물질적.정신적으로 고양시켜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표방하는 세계 차원의 대외 전략과 이에 기반한 외교.안보정책 기조의 연장선에서 이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은 경제력.군사력, 민족적 결집력의 강화를 통한 소위 '종합국력'의 증강 필요성과 이를 통해 21세기 미국에 버금가는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특히 중국은 국제사회의 책임과 원칙을 준수하고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자국과 관련된 대만.티베트.댜오위다오(釣魚島).난사(南沙)군도, 인권 등의 문제에서는 타협.양보가 절대 불가한 영토.주권사항으로 못박는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은 평화와 번영을 향한 행보가 아직은 유동적인 동북아, 자국의 동북지역에서 자민족의 정체성과 이익 기반을 다질 필요성을 갖는 것이다.

결국 정치.경제.사회를 불문하고 체제전환의 과도기에 처한 중국은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이념적 동요를 억제하고 지역.계층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으며, 동북공정과 고구려사의 자의적 해석은 그 연장선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중국을 알기 위한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부.학계.민간단체들이 가능한 역할을 분담해 내실있는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감정적 대응은 소기의 성과를 얻기 어려우며 자칫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와 함께 한.중 관계의 현실과 장기적 비전 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경제.안보를 망라한 '전면적 동반자관계' 발전의 불가피성을 충분히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도 한.중 간에는 협력과 갈등이 상호교차할 것이나 유념할 것은 우리가 중국의 속내를 잘 모르면서 지나치게 우리식으로 쉽게 접근하고 또 쉽게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중국을 더욱 철저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