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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⑧ 삼성서울병원 혈액투석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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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재 환자가 4시간에 걸쳐 혈액 투석을 받고 있다

‘신장이 망가져도 생명은 지속된다’. 인공신장인 투석치료 덕분이다. 만성 심부전(心不全), 만성 간(肝)부전 환자들이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인공 장기가 없어 이식수술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투석 치료의 필요성은 말기 신부전 환자가 늘면서 급증하고 있다. 국내 만성 신부전 환자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당뇨병과 고혈압 탓이다. 투석 치료는 신장 이식수술이 힘든 고령의 만성 신부전 환자에겐 생명의 빛이다. 이번 주 중앙일보는 삼성서울병원 혈액투석실을 취재했다.

팔 정맥·동맥 연결 수술 받고 주 3회 투석

김대중 교수가 투석치료전 김상재씨를 진료 하고 있다.

김상재(81)씨가 신장 이상을 처음 알게 된 건 1997년 전립선 비대증 치료를 받을 때다.

이때 신장 이상을 알려주는 혈중 크레아틴 수치가 2.0㎎/dL(정상 1.2㎎/dL이하 )로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도 일상생활에 불편한 증상이 없기에 그럭저럭 지냈다. 그가 본격적인 만성 신부전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01년이다. 이후 김씨는 식사요법과 약물 치료를 했지만 신장은 서서히 손상됐다. 2006년 봄 크레아틴 수치가 11.07㎎/dL까지 치솟자 삼성서울병원 김대중(신장내과) 교수는 혈액투석 치료를 결정했다.

혈액투석을 받으려면 팔에 정맥과 동맥을 연결해 주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압력이 높은 동맥 피를 직접 정맥으로 흐르게 해 혈관을 굵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야 1분에 150~250㏄나 되는 많은 혈액이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이 수술 받은 김씨는 이후 매주 화·목·토 주 3회 혈액투석을 받았다.

혈압 갑자기 떨어져 … 심하면 중단하기도

수많은 얇은 인공막으로 구성된 혈액 투석기. [신인섭 기자]

7월 23일 오후 2시40분, 김씨가 딸과 함께 혈액투석실로 들어왔다. 그는 한 달 전부터 위장 출혈과 폐렴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중이다. 만성 신부전 환자는 다른 질병이 생겨 치료를 받을 경우에도 혈액투석은 제 날짜에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환자가 투석기 옆 침대에 눕자 정수진 간호사가 욕창이 없는지를 살핀 뒤 혈압(114/58㎜Hg)과 맥박(1분에 81회)을 측정하면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정수진 간호사)

이 순간 사진기자가 연방 플래시를 터뜨렸다. 김씨는 대답 대신 “웬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라며 핀잔을 준다.

“지금 왜 여기 오신 줄 아세요?” 환자의 의식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간호사의 질문이다.

“투석 받기 위해서지.”(김씨)

연이어 김씨의 왼쪽 팔에 소독포가 깔리고 베타딘 소독이 진행된다. 이후 굵은 바늘이 팔뚝 위아래 두 곳에 꽂힌다. “아야~.” 김씨의 비명과 더불어 혈액이 나온다.

“아래쪽 혈관을 통해 혈액이 나오면 투석기를 통과하면서 노폐물·수분·전해질 등이 걸러지고, 이후 깨끗해진 혈액이 위쪽 혈관을 통해 다시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김 교수가 기자에게 설명을 한다.

투석기로 혈액이 들어가자 정 간호사가 재빨리 혈액 배출 속도를 분당 150㏄로 맞춘 뒤 오늘의 투석 목표를 위해 기계를 작동시킨다.

“체중은 현재 59.1㎏인데 57.7㎏로 줄이는 게 목표예요. 또 투석이 끝나면 생리식염수 200mL를 주입해야 합니다. 따라서 1.4㎏에 200mL를 더한 1.6㎏의 수분을 배출시켜야 해요.”(정 간호사)

5분이 흘렀다. 혈액이 투석기로 제대로 순환되는 게 확인되자 의료진은 배출되는 혈액량을 1분에 250㏄로 높였다. 투석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다.

혈액투석 중 가장 빈발하는 문제점은 혈압 강하다. 김씨도 3시10분이 되자 수축기 혈압이 105㎜Hg로 낮아졌다.

“이 정도 떨어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50㎜Hg, 심지어 100㎜Hg씩 뚝 떨어지는 환자도 있어요. 그럴 땐 투석을 하더라도 부기(수분)는 못 빼고 노폐물만 걸러내죠. 물론 투석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김 교수)

6시30분, 식염수 주입이 끝나자 간호사가 바늘을 빼고 10분간 지혈을 한다. 오늘 투석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신인섭 기자



혈액투석은
신장기능 10~15% 때 시작 … 만성 신부전 치료법 병행해야

만성 신부전증 환자는 저염식·고혈압 치료 등으로 신장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도 신장 기능은 조금씩 나빠지는데 남은 신장 기능이 10~15%에 불과한 상황에 이르면 신장 기능을 대신해 유해한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는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법은 크게 복막투석·혈액투석·신장이식 등 세 가지다. 이 중 통상 혈액투석이 우선적으로 사용된다. 최근 의학계에선 기왕 투석을 받아야 할 환자라면 일찍 시작한다. 환자가 투석 치료에 쉽게 적응하고, 치료 효과를 높일 뿐만 아니라 훗날 건강한 상태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혈액투석기는 수많은 얇은 인공막으로 구성된다. 이 막 양쪽으로 혈액과 투석액이 서로 엇갈려 흘러가면서 수분·노폐물·전해질 등이 배출된다. 이때 알부민·적혈구·혈소판·세균 등 고분자 물질은 통과하지 않고, 전해질·요산·요소·크레아틴 등 미세한 물질만 통과한다.

혈액투석이 신장의 모든 기능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수분과 노폐물을 제거해 주면서 우리 몸의 전해질·산도 등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줄 뿐이다. 게다가 신장은 하루 24시간, 주 168시간 쉼 없이 작동하지만 혈액투석은 고작 주 12~15시간만 받을 수 있다(통상 1회 4시간씩, 주 3회). 따라서 투석을 받더라도 환자는 지속적으로 싱겁게 먹기, 물 적게 마시기, 빈혈 치료, 고혈압 치료 등 다른 만성 신부전 치료법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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