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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미국 전문직 사회에 떠오른 샛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계 2세인 미국 예일대 법대의 헤럴드 고 (고홍주) 교수가 미 상원 인준을 거쳐 미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가 됐다.

그가 세계 최강국의 높은 관직에 오른 것은 1백년이 다 되는 한국 이민사의 큰 경사다.

한편 최초로 미 연방하원에 진출한 제이 김 (김창준) 의원은 조락 (凋落) 의 계절과 함께 정계를 떠나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

한국 기업으로부터 불법선거자금을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를 가만 놓아두지 않은 조국도 원망스럽지만 일본계이면서도 일본 땅을 밟지 않은 대니얼 이노우에 의원처럼 철저한 미국인이 되지 못한 그에게도 회한은 남을 것이다.

별이 뜨고 또 한 별이 지던 같은 주말, 필자는 미국의 전문직 사회에 떠오른 한 무리의 샛별들을 보았다.

코리아 소사이어티와 뉴욕대가 공동 주최한 '미국 언론의 한국 보도' 토론회에 나온 패널리스트들이 그들이었다.

한국의 경제위기에 초점이 맞춰진 미디어원탁토론에는 에미상 (賞) 을 받은 폭스 뉴스의 빌 매크리어리 기자와 일본의 문예춘추 (文藝春秋) 북미 (北美) 총국장 등 저명 언론인도 참여했지만, 단연 돋보인 것은 영향력이 큰 미국 언론기관에 진출한 5명의 한국계2세 기자들이었다.

TV와 라디오 진출이 최근 부쩍 늘어 한국계 기자수는 2백명에 이르지만 여론의 나라를 움직이는 5만명 기자수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나마 활자매체에는 고작 20명 안팎이다.

시험입사가 아니라 능력으로 견뎌내야 하는 피나는 경쟁체제기 때문이다.

이날 필자가 만난 5명의 기자는 미국 주류 (主流) 언론에 박힌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면면을 살펴보자. 제임스 김 (김호식) 은 미국 최대 발행부수인 USA투데이 경제기자로 한국.태국.인도네시아 특파원을 역임했고, 주로 기술변화에 따른 새 금융문화에 관심을 두고 보도한다.

다우존스 뉴스기자 루이스 허 (허기영) 는 전세계 특수독자층을 상대로 '월가 (街) 의 바이블' 을 쓴다.

얼굴에 아직 애티가 흐르지만 서울지국장 발령을 받아 3명의 특파원을 거느리게 됐다.

AP통신 강형원은 백악관과 워싱턴의 하루 하루 이미지를 결정짓는 사진부장이다.

로스앤젤레스 폭동때 극적인 순간을 잡아 그가 속했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에 퓰리처상을 안겼다.

이날도 그의 손을 거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가 손잡는 사진을 쓴 뉴욕 타임스를 자랑스레 펼쳐보였다.

두번째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된 피터 배 (배동신) 는 학생시절부터 스타였다.

일간 36면 2만3천부를 찍어내는 대학 (UCLA) 신문의 편집장이었다.

펠리셔 백은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다.

'백재정 (白財政)' 으로 유명했던 백두진 (白斗鎭) 전총리의 손녀로 민감한 한국 문제를 취재할 때는 한국인 통역을 데리고 다닌다고 해 폭소가 터졌다.

특히 이 자리에는 이들의 언론계 대부이며 최초의 동양계 폭로기자로 수많은 언론상을 수상한 KW 리 (이경원)가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와 어느덧 성장한 새 세대에게 전통을 넘겨주는 감회어린 순간이기도 했다.

올해 70세인 李기자는 금세기 가장 창조적인 발자취를 남긴 세계 언론인 5백명의 하나로 뽑혀 생존인사로는 테드 터너 (CNN - TV 창립자) 등과 함께 워싱턴의 언론박물관 (Newseum)에 오른 한인사회의 히어로다.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어디까지나 미국 기자인 그들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재벌 위주의 보도, 경제위기에 가려진 휴먼코스트 (인적 손실과 고통) 등 한국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이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인터넷혁명으로 정보는 홍수를 만났지만 한국은 '미국 언론의 지도' 에 없음을 인정했다.

더 큰 지도속에서 한국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커서 변호사가 돼라, 박사나 의사가 돼라" 는 부모들의 성화를 이겨낸 세대다.

하지만 또다른 딜레마에 부닥치기 일쑤였다.

한국인 가게에서 유통기간이 지난 우유를 판다고 보도했다가 "동포끼리 이럴 수 있느냐" 며 협박도 받았음을 털어놓았다.

서울 근무를 위해 떠나는 許기자에게 물었다.

"한국을 위해 쓰겠는가, 미국을 위해 쓰겠는가. "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회사와 투자자를 위해 쓰겠다. " 우문현답이었다.

이들은 한국인이나 미국인이기 전에 독립된 직업인이다.

국난 (國難) 을 만난 우리가 다양한 전문직에서 일하는 그들을 귀중한 자산으로 삼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최규장(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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