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6개 민간경제연 이례적 공동건의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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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대우.삼성.현대.LG경제연구소, 중소기업연구원 등 6대 민간경제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정부의 각종 경제 관련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특히 기업 개혁정책과 병행해 ^공무원 및 정부조직 개편^정치권 및 공공부문 개혁도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촉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재계가 자구 (自救) 노력을 하지 않고 자꾸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면서 "기업구조조정을 당초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며 개혁을 거스르는 건의는 수용할 수 없다" 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기관들은 28일 공동 발간한 '최근 경제 현안과 대책' 이란 보고서에서 "외환위기는 호전되고 있지만 정부의 긴축정책 지속으로 장기 복합불황 도래의 위험성이 있다" 고 지적하면서 기업 부채비율 축소요구에 앞서 회계.세제의 개선과 꺾기 등 금융관행의 개선을 요구했다.

또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 (RP) 금리를 5%대까지 추가로 내려 자금경색을 완화하고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60% 수준의 중기의무대출비율을 부과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김우중 (金宇中) 전경련회장과 5대 그룹의 주도아래 종합적인 대 (對) 정부 건의사항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3개월간의 작업 끝에 나온 것이다.

재계의 대변자인 이들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선 것은 처음인데다 내용이 정부의 기업 개혁정책과 크게 상충해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민간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6개 부문 건의와 정부 입장을 정리한다.

◇ 거시경제 운용 = 보고서는 정부의 수출.경기부양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자산디플레를 해소하기 위해 RP금리를 5%대로 인하하는 한편 수출증대를 위해 대기업.종합무역상사에도 무역금융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4분기중 본원통화를 국제통화기금 (IMF) 과 합의한 25조6천4백억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며, 이 경우 3조원 정도 추가 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RP금리에 대해서는 추가 인하를 적극 검토중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대기업에 연 3%짜리 무역금융을 지원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 (WTO)가 문제삼고 있어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 기업구조조정 = 빅딜.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기업구조조정 정책도 정부.정치권의 과도한 개입과 정책혼선으로 부작용을 빚을 수 있으며 현실을 무시한 축소 일변도 정책이 지속될 경우 내수시장 위축.실업자 증대.신용경색 등이 가중될 것이라는 게 재계 입장.

특히 부채비율을 내년말까지 2백%로 축소하라는 요구는 금융.업종별 특성을 간과한 조치며 시간이 촉박해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금융시장 혼란만 가중될 뿐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기업 자율과 시장원리에 따라 추진하며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부채비율 축소' 는 바뀔 수 없는 원칙이며 기업들이 우량 계열사를 팔고 보유 현금으로 빚을 갚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면 목표달성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결합재무제표 도입 연기나 신규 채무보증금지 완화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대신 꺾기 관행이나 소비자금융 활성화는 정부가 적극 추진중이며 주택저당채권 제도 도입과 주택구입자금 공급확대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 금융구조조정 = 보고서는 추진주체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재원마련의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단기적으로는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퇴출은행 거래기업의 지급보증 인수 ▶퇴출은행 거래기업의 신규대출 촉진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론 ▶회생가능 은행에 대한 자금지원^기업부채의 은행 출자전환 등이 요구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반면 정부측은 기업.금융시장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것은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병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구조조정 시한을 늦출 계획도 없다고 강조했다.

◇ 공공부문 = 재계가 예상외로 강하게 지적한 대목이다.

인사의 일관성.전문성 제고를 위한 전담기구 설치, 명예퇴직 등을 통한 공무원 감축과 함께 경제 부총리제 신설을 비롯해 행정자치부.건설교통부.산업자원부.농림부 축소 등 중앙부처 구조개편도 시급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요 골자.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만도 제기됐다.

국회 정상화를 위해 국회표결 실명제와 국회내 예산국 설치, 정치비용 절감과 투명화 등을 통한 정치개혁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것. 정부도 필요성에 공감하는 입장을 보였다.

◇ 노동부문 = 현 실업대책은 너무 산발적이며 효과가 적으므로 재정지출 확대와 통화공급 확대 등을 통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 요지. 이 부문 역시 정부도 큰 반론이 없었다.

◇ 중소기업 지원 = 금융기관에 대해 60% 수준의 의무대출비율을 부과하는 한편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 지원시 세제혜택 부과 등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보고서 요지. 정부도 중기 지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며 은행장이 직접 지점을 돌며 대출을 늘리도록 독려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별세액감면 대상 업종 확대는 당장 수용하기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현곤.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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