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폭 피해자 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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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여인이 5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추모공원의 추모비 앞에 헌화하면서 원폭에 희생된 한국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전으로 이끈 미군의 원폭 투하는 올해로 64주년을 맞았다. [히로시마 AP=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여 온 원폭 피해자들을 구제하기로 결정했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6일 일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다나카 데루미(田中熙巳) 사무국장과 ‘원폭증 인정 집단소송 종결에 대한 기본 방침에 관한 확인서’에 서명했다. 이날은 히로시마(廣島) 원폭 투하 64주년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이번 결정은 그간 신중했던 정부의 피폭자 원호행정을 구제 쪽으로 전환시킨 커다란 전기”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구제된 피폭자들은 2003년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306명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長崎) 원폭 피해자들의 원폭증 인정소송에서 19차례 패소했으나 공식적으로 원폭증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 구제 방안은 원폭증 인정소송 1심에서 승소한 원폭 피해자 전원에 대해 정부가 원폭증을 인정해 항소를 철회하고, 1심에서 패소한 원폭 피해자도 의원 입법을 통해 구제키로 했다. 피해자 기금을 조성하고 운용을 피해자 단체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원폭증이 인정된 사람은 의료 특별수당으로 매달 13만7430엔(약 180만원)을 받게 된다.

아소 총리는 “원고들이 고령이고 소송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앞서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늙고 병이 심해진 피폭자들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알고 있다. 깊이 사과한다”며 공식 사죄했다.

이날 구제된 306명 외에 아직도 원폭증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피폭자는 7700여 명에 달한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폭자들도 원폭증을 인정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는 “모두를 인정할 경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서둘러 결론 낼 문제”라며 정권 교체 시 구제 범위 확대를 시사했다. 아소 총리가 원폭증 인정에 반대해 온 법무성·후생성 등을 설득해 구제책을 제시한 것은 30일 치러지는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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