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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 부도물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성철 큰스님 부도 (浮屠.사리탑)가 스님의 입적 5주기를 맞는 11월8일 (음력 9월20일) 일반에 공개된다.

부도란 한 스님의 유골을 안치한 기념 돌탑으로 성철스님 부도는 성철스님문도회에 의해 스님의 사리와 금강경을 함께 넣어 해인사 일주문 옆 부도밭에 설치됐다.

재일 (在日) 설치미술가 최재은 (崔在銀.45) 씨가 3년여 작업끝에 완성한 이 부도는 바로 옆에 건립된 성철스님 전시실과 함께 스님의 뜻을 후대에 전하게 된다.

최씨는 사찰 조형물의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적 조형미를 담은 새로운 형식의 부도를 만들어냈다.

일반 공개에 앞서 이 부도를 둘러본 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가 부도 건립 의의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성철스님 부도가 완공됐다는 소식을 듣고 천성을 속이지 못하여 해인사로 달려가 배관하고 이 글을 쓴다.

특히 이 불교 기념조형물에 대하여 나는 각별한 관심과 기대가 있어왔다.

우리나라 부도의 역사는 9세기 하대신라에 시작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1천년이 넘는다.

처음에는 8각당 (八角堂) 형에서 출발하여 석종 (石鐘) 형, 석탑형, 계란 (卵) 형 등으로 계속 새 양식을 낳으며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큰 사찰 한쪽에는 반드시 그 절집을 대표하는 스님의 부도들이 남아 있고 쌍봉사 철감, 태안사 혜철, 법천사 지광, 연곡사 동부도 등은 한국 불교미술사의 빛나는 유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고 유감스럽게도 정작 우리의 20세기는 20세기다운 정신과 예술이 반영된 부도가 제작되지 않았다.

그저 무의미한 모방 아니면 과도한 치장으로 존경과 예배의 염 (念) 은 고사하고 외면과 불평의 대상이 되어 왔다.

성철스님 부도는 이런 반성에서 20세기다운 부도를 제작코자 현상공모를 했다.

그러나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결국 성철스님문도회는 작가 최재은에게 위촉하게 됐다.

최재은은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설치미술가로 그녀의 활약은 미국의 김원숙, 프랑스의 김순기, 독일의 노은임 등과 함께 한국을 빛내는 '억척스런 대한의 여성작가'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이다.

93년 파리 유네스코 건물 옥외에서 열린 다실 (茶室) 축제에서 이탈리아 건축가 에토르 소트사스 (E.Sottsass).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安藤忠雄) 등과 함께 최재은도 5명 중 한명으로 뽑혔을 정도였고, 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는 일본의 커미셔너 이토 준지가 그녀를 추천할 정도로 국적을 뛰어넘는 대접을 받았다.

최재은의 예술이 국내에 처음 선보인 것은 90년 경동교회를 대나무로 입힌 설치작업이었고, 93년 대전엑스포 때는, 나도 그 심포지움에 참석한 바 있는, '재생조형관' 설치를 맡았다.

지금 쉽게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녀의 작품은 삼성의료원 영안실 입구에 있는 소위 이브 클랭 블루로 통하는 환상적인 파랑색 조형물인 '시간의 방향' 이다.

최재은의 예술세계는 건축.조각.공예의 장르개념을 무너뜨린 설치미술로 그 발상의 스케일이 아주 크고, 형식 또한 대단히 전위적이다.

성철스님 부도에서도 최재은은 설치개념에서 출발하여 자연과 구조와 관객 (참배객) 이 일체가 되는 기념조형물을 연출해 냈다.

그러나 구조물 자체는 대단히 '미니멀' 한 방향으로 추구했다.

본래 예술이란 작가의 감정이 최대치 (맥시멈) 로 나타나는 것이 생리이지만, 미니멀 아트에서는 오히려 최소화시킴으로써 결국 대상의 본질은 더욱 드러나고 관객을 관조에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철스님 부도에는 그런 미니멀 사상이 어울렸던 것이다.

부도의 기본개념은 원 (圓) 이며, 원의 시초형태인 정사각형과 원의 발전형태인 구 (球) 만이 이 구조속에 들어와 있다.

부도의 여러 전통 중 통도사.금산사의 금강제단 양식을 이어받아 '낮은 단 (壇) 위의 구 (球) 하나' 로 압축되었다.

108평의 원형참배대는 68개로 등분하여 거기서 기도할 수 있게 했고 사리탑은 3단의 4각받침대에 반구 (半球) 두개가 마치 앙련 (仰蓮) 과 복련 (復蓮) 개념으로 '구' 를 받들고 있다.

그 예리한 선맛과 날아갈 듯한 가벼움이 이 부도의 정신과 형식 모두에서 핵심 요소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미묘한 느낌을 살리기 위하여 그녀는 돌조각에서 동양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기술팀의 도움을 받았다.

그것이 한때 엉뚱하게도 일본색이라는 모함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치밀한 작업 덕분에 0.1㎜의 오차도 없이 1.1도의 부드러운 기울기를 갖고 있는 원형참배대의 구와 반구는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작가는 이 부도에 '자 (自) 의 공간' 이라 이름지었다.

해인사 일주문 못미쳐 부도밭 뒤편에 모셔 있는 성철스님 부도는 결국 금세기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던 스님의 가장 사랑받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사리탑으로 될 것만 같다.

유홍준(영남대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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