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부패고리]건설현장 상납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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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뇌물 안주면 일이 됩니까. 손을 내미는 공무원들은 왜 그리 많은지…. " 경기도 A시에서 재개발아파트 공사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C건설 朴모 (44) 부장. 아파트 건축 공사현장에서만 20년 가까이 일해온 朴부장은 "건축 허가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구청.경찰.소방서 등 17곳이 넘는 기관 및 부서의 공무원들이 뇌물을 챙긴다" 고 말했다.

'공무원 모시기' 는 건축허가 과정부터 시작된다.

재개발 아파트 공사를 위해 구청 건축과 등 허가관련 공무원 4명에게 2백만원씩, 구청 건축심의회에 1천만원의 뇌물을 건넸다.

이같은 '인사' 가 없으면 온갖 이유로 허가를 질질 끌어 공사에 착수하기도 어렵다는 것. 이와 관련, 지방 P시에서 중소건축회사를 운영하는 金모 (36) 사장의 사례는 인허가와 관련한 공무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金사장은 지난해말 경북 A군에 전원주택 40채를 짓는 사업계획을 마련하고 현재 30여채에 대해 입주예정자와 계약을 끝내놓은 상태. 그러나 A군청에서 도대체 허가를 내주지 않아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군청에서 3~4개월에 한번씩, 그것도 2채씩 밖에 허가를 안내주는 거에요. 올초부터 건축허가신청을 냈지만 이제껏 겨우 4채밖에 허가를 못받았어요. "

똑같은 지역에 똑같은 집을 짓는데도 매번 똑같은 서류를 다시 내도록 요구하는데다 '부지 말뚝을 4개에서 8개로 늘리라' '말뚝 색깔을 하얗게 칠하라' 는 등의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반려한다는 것이다.

金사장이 10개월간 공무원들에게 '기름칠' 한 돈만도 벌써 1천만원이 넘는다.

아파트 공사현장 朴부장의 이어지는 하소연. 명절이나 휴가기간엔 잊지 않고 이들 공무원을 챙겨야 하는 것은 새 정부 아래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설.추석엔 10만원대의 선물세트를 돌렸고 "휴가를 떠난다" 고 전화를 걸어오는 공무원들에겐 별도의 봉투를 마련해줘야 했다.

중간 감리심사 과정에서도 관련 공무원들에게 향응.봉투는 필수. 잦은 술자리는 물론이고 2~3개월에 한번씩 2백만~3백만원의 '떡값' 을 건넸다.

관할 경찰서.소방서 공무원도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전' 이다.

대형 건설공사장에서 사용하는 폭발물.유류의 안전을 관리.감독한다는 명분으로 접근하기 때문. 30만~50만원씩의 상납이 '기본 예의' 다.

구청의 환경관련 부서 역시 '기름칠' 을 해야 한다.

공사중 발생하는 분진.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각종 민원을 담당하는 이들 공무원에게 밉보였다가는 자칫 화를 당하기 십상이다.

매달 20만~30만원이 든 봉투를 돌린다.

"레미콘 차량 주정차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찾아오는 경찰 순찰차까지 합치면 돈을 줘야 할 공무원은 30명이 넘는다" 다고는 朴부장은 "건축공사 현장책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공기술이나 안전관리가 아니라 관련 공무원 모시기" 라며 한숨 쉬었다.

김종문.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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