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교수外 '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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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웃사이더' .사회의 주류나 대세를 빗겨간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다.

슬그머니 낭만적.서정적 분위기가 배어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좋든 싫든 사회의 본류에서 떨어져나온데서 발생하는 극도의 소외감 때문. 해서 진정한 아웃사이더가 되려면 주위 시선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용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순간적 '일탈' 이 아닌 사회.시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뒤따라야 한다.

몸담은 곳이 정치든, 경제든, 예술이든…. 아웃사이더가 '아름다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웃사이더는. 특히 일제침략, 6.25 전쟁, 독재정권으로 이어진 우리 근현대사를 '지조' 하나로 버텼으면서도 지금은 세인의 관심에서 멀찌감치 사라진 그들의 자화상은 어떨까.

"머리는 희었으되/마음은 일편단심/나라 구하려는 생각/그것 말고 무어 있을까. / (중략) /인생이란 언젠가 죽게 마련. /죽으면 죽었지/욕되게는 살지 않으리. " 한국의 '마지막 선비' 로 불리는 김창숙 (1879~1962) 이 남긴 자작시 '신탁 통치' 의 부분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지금은 글을 읽을 때가 아니다" 며 독립운동을 시작해 평생 계속된 그의 몸부림. 일제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됐고, 해방 후 단정수립에 반대하다 정치탄압의 수모를 겪으며 급기야 집 한 칸 없이 낯선 여관방에서 숨을 거뒀다.

선비의 꼿꼿함 하나로 추호의 타협 없이 항일구국.반독재 외길을 걸은 그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재일 사학자 박경식 (1922~1998) 은 어떤가.

올 초 타계 당시 그를 기억한 곳은 일간지 몇 곳뿐. 7세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 한국인 문제에 대한 조사.연구에 진력했건만, 그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한 학계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남북한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오직 '조선인' 으로 남으려 한 결과 남북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하며 쓸쓸한 이국에서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도서출판 삼인에서 출간된 '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 .한국 현대사에 남다른 발자취를 남기고도 그 이름이 '지워진' 사람 11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역사의 정의와 민족문화를 계승하려고 고독한 '투쟁' 을 펼친 이들이다.

당대의 주목이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정수' 를 되살려낸 것. 친일파 연구에 매진한 역사학자 임종국, 박정희 정권의 화살을 맞은 언론인 조용수, 법과 양심의 정신을 지킨 판사 유병진, 사랑의 공동체를 꿈꾼 진보신학자 김재준, 국악 대중화에 헌신한 정철호, 시대의 고민을 악보에 옮긴 작곡가 김순남,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한 도예가 유근형, 스님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숙 등등. 격동의 시대를 일관된 정신으로 버텨간 그들의 행적을 좇다 보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단함을 이겨내는 자신감이 붙는 느낌이 든다.

물론 '아웃사이더' 만이 역사를 이끌어간 것은 아닐 것. 하지만 우리 현대사의 '빈 고리' 혹은 '블랙홀' 을 차분하게 이어주고 메워준다는 점에서 반갑다.

개개인의 대쪽같은 행적이 주는 감동도 큰 선물이다.

글은 김경재 한신대 교수 (신학).박원순 변호사.임혜봉 스님.김수현 목원대 강사 (음악사) 등 각계 전문가 10인이 맡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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