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불화의 '그늘'…일본 아동학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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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교적 윤리가 남아 있는 일본은 어린이 인권보다 가정보호를 우선하는 쪽이다.

어린이가 가정내 폭력에 노출되더라도 되도록 가정내에서 치유하도록 권장해 왔다.

학대받는 어린이를 위한 시설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바뀌고 있다.

지난 2년간 16명의 어린이들이 아동학대로 희생됐다는 최근 통계는 사회전체에 경종을 울리면서 인식전환을 재촉했다.

생후 10개월짜리 딸이 보챈다고 장롱속에 가둔 뒤 1주일간 빠찡꼬 (도박장)에 빠져 있다 굶겨죽인 비정한 20대 주부, 세살짜리 아들을 벽에다 던져 숨지게 한 30대 남자도 있었다.

아동학대상담소의 상담전화 건수는 지난 3년간 곱절로 증가했다.

"잦은 구타로 다섯살짜리 아들이 나만 보면 손으로 머리부터 감싼다" 며 후회하는 주부,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

차라리 불쌍한 자식을 당국 보호에 맡기고 싶다" 는 전화가 늘어났다.

일본 전문가들은 7년간의 장기불황이 가정내 폭력을 확산시킨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그로 인한 어른들의 스트레스가 죄없는 어린이들에게 퍼부어지고 있다는 경고다.

일본 정부도 적극 개입쪽으로 정책방향을 틀고 있다.

한국에도 보험금을 노려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비정한 부모가 등장했다.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은 실업자 대책 못지 않게 시급하다는 것이 일본의 경험이다.

도쿄=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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