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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실직자여,농촌으로 오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군나르 뮈르달 (Gunnar Myrdal) 은 노벨상을 받았던 스웨덴의 경제학자다.

1968년에 그는 '아시아의 드라마 (Asian Drama)' 란 명저를 출간했다.

국빈론 (國貧論) 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그는 한 나라가 가난해지는 까닭을 설명했다.

한 개인은 물론이려니와 한 나라가 가난해지는 데는 반드시 까닭이 있다.

개인도, 나라도 저절로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어 가난해진다.

그렇다면 그 까닭이 무엇일까. 미르달은 가난한 나라들의 대표격인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여러나라들의 상황을 분석해 그렇게 가난하게 된 까닭을 지적했다.

자원이나 자본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생활태도 때문이라 했다.

가난에 이른 까닭이 제도와 가치관 때문이기에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제도를 고치고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길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가 고심하고 있는 구조조정이나 제2건국운동 같은 움직임들도 따지고 보면 이들 두가지, 즉 제도를 바꾸고 가치관을 바로 세우자는 운동이라 여겨진다.

미르달이 지적한 바로는 빈곤.침체.부패.불평등 등의 사회악은 국민의 사회적 규율 부족과 비합리.비능률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사회제도와 국민들의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고는 해결의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내가 몸담아 있는 두레마을의 경우를 한 예로 들어보자. 물론 우리 마을이 성공한 마을도 아니고 규모가 큰 마을도 아니어서 가난에서 벗어난 성공사례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예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15년 전에 한 야산을 개발해 2백여명 남짓한 가족들이 살아 오게 된 우리 마을은 땅과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자는 이상과 의욕과는 달리 적자생활을 면할 수 없었다.

대표인 나는 적자를 메워나가기 위해 동분서주해 왔었다.

불과 2년 전에는 매월 적자가 3천만~4천만원에 쌓인 부채가 10억원을 넘어섰다.

그런 상태로는 공동체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위기를 인식하고 우리는 가족회의를 거쳐 대대적인 이노베이션에 착수했다.

첫째는 일부 땅을 팔아 부채를 줄였다.

둘째로 적자 나는 부서는 폐지하고 흑자를 보고 있거나 유망한 부서에는 투자를 강화했다.

셋째는 농업공동체의 정신과 생활에 적응해 땀흘려 살려는 일꾼들은 남고 그렇지 못한 일꾼들은 자신의 적성을 찾아 떠났다.

넷째는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각 가정에 매월 지출되던 생활비도 절반으로 줄였다.

다섯째는 부서별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바꾸고 개인에게도 능력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이렇게 조정을 하고 새롭게 출발한지 1년만에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시대를 맞게 됐다.

IMF시대를 맞아 온 나라에 어려움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 마을은 이미 자립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마을의 가공공장도, 퇴비공장도, 양돈장과 영농부서도 골고루 흑자경영의 단계에 들어가 활기있게 돌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을이야 2백명 못되는 마을 식구들이 한 솥에 밥 먹고 살아가는 조그마한 공동체인지라 나라 전체나 큰 기업들에 비해 무엇이라 말할 계재가 못된다.

그러나 제도를 바꾸고 마음가짐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예는 능히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자신감을 얻어 이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공동체 건설에 나서고 있다.

다름 아니라 적합한 지역에 수십만평 혹은 1백만평 이상의 땅을 확보해 도시 실직자 수백세대를 영입해 더불어 사는 농촌마을을 세우자는 계획이다.

이런 사업은 실직자문제 해결에 일조할 것이고 놀고 있는 땅을 농토로 바꾸어 줄 것이며 해마다 1백억달러가 넘는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는 현실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므로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농업공동체 마을을 세우되 마을의 수준을 높여 세계수준의 문화마을.자연생태마을.고소득 마을.농업관광마을을 세워 나간다면 얼마나 시의적절하고 보람있는 일이겠는가.

지금 나라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기 죽어 살지 말자.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더불어 힘을 합쳐 미래에 도전하자. 지금 농촌에는 마을마다 빈집들이 있고 조상들이 일구었던 땅들이 쑥밭이 돼 있다.

도시의 실직자들이여, 농촌으로 오라. 땀과 정성으로 흙에 도전해 일한다면 IMF가 오히려 번영의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김진홍(두레마을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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