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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돌아오라 소렌토로 Circolo Golf Napol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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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지역 감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들이 같은 나라에 편제되어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북부인들은 남부 사람들이 게으르고 놀기만 좋아하여 자신들의 세금을 축낸다 생각하고, 남부인들은 북부 사람들이 인정 없는 깍쟁이에 삶을 즐길 줄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밀라노, 베니스를 중심으로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와 농업 중심의 남부는 GNP가 5배 차이가 날 정도로 경제적 격차가 심하다. 인종적으로도 남부는 라틴계에 아랍계가 섞인 인종이고, 북부는 게르만적 요소가 강하다. 역사적으로도 남부와 북부는 완전히 별개의 나라였다. 밀라노만 보아도 이탈리아에 편입된 것은 1861년으로 불과 150년 전이다. 실제로 밀라노와 피렌체, 베네치아 등 부유한 북부의 도시들은 이탈리아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준비위원회를 만든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감정이야 그 땅에 뼈 묻고 코 박고 살아가는 그들만의 정서이고, 방랑자에게 남부 이탈리아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해변의 로망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우린 세계 3대 미항 나폴리와 돌아오라 소렌토, 꿈의 휴양지 카프리가 전격 포진해 있는 남서부 해안으로 남하했다. 이탈리아가 전체적으로 산악지형이지만 우리의 목적지인 남서부 해안은 더 험난한 산악지형이었다. 이탈리아가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로 1800년대까지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것도 이 험한 산악지형이 원인이라고 한다. 다소 불편한 고속도로를 타고 나폴리를 우회하여 소렌토로 접어든 순간.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험한 산악지형이 바다를 만나면서 깎아지른 절벽과 코발트 빛 잔잔한 지중해가 맞닿은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퀄리티가 다른 태양빛, 새파란 바다, 아찔한 절벽,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파스텔 톤의 건물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 지역에 머무르는 내내 우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입가에 미소를 흘리며 실실 대고 돌아다녔다. 지중해의 아우라는 일순간에 사람을 무장 해제 시키는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절벽 위에 매달린 건물들은 대부분 소규모의 호텔들이었다. 파스텔톤의 외장 페인트 색상마저 눈 부시게 아름다웠다. 언젠가 지중해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특이하게도 페인트를 구입해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중해의 코발트색과 건물들의 색상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한국에서 도전해 보려는 심산이었다고. 그러나 한국에서 뚜껑을 딴 그 페인트는 이미 지중해의 색이 아니었다. 모름지기 지중해의 색상은 그 찬란한 태양빛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 빛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린 오직 지중해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금쪽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용서하기 힘들었던 대목… 애석하게도 골프장이 없었다. 고작 3홀, 9홀 규모의 호텔 부설 골프장들이 띄엄띄엄 있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특징을 가진 18홀 골프장은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산악지형의 특성상 18홀 골프장 부지 마련이 힘들고, 염려했던 대로 지중해성 기후가 잔디 생육에 부적합한 것이 이유였다. 덥고 건조한 여름 날씨에 불철주야 잔디 걱정을 하며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호텔을 짓는 것이 훨씬 객단가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골프는 그리 인기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한 면적의 3배 정도의 땅 덩어리 이탈리아에 골프장이 불과 230여 개라고 하니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찍이 국가적 차원에서 관광 상품 개발을 위해 골프장 건설을 도모한 적이 있었으나 이상의 이유들로 말미암아 나폴리와 소렌토 일대의 지중해변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소렌토에서 한 시간 거리, 나폴리에 있는 Circolo Golf Napoli을 찾아갔다. 9 홀을 두 번 돌면 5,350 m, 파 70. 코스는 완전평면 TV처럼 반듯하고 평평한 파크랜드 스타일이었다. 티잉 그라운드조차 페어웨이와 고도 차이가 없어 마치 지중해 수면처럼 잔잔한 코스였다.

마치 뭉게구름을 작대기에 꽂아 놓은 것 같은 특이한 형상의 소나무들과 뽀얀 먼지가 내려 앉은 것 같은 키 작은 올리브나무들 사이사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누볐다. 캐디도 없이 늘 새로운 코스에 도전해야 하는 복불복 골퍼인 우리에게 9 홀을 두 바퀴 돈다는 것은 심리적 안정감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베스트 스코어 경신에 대한 기대감도 증폭되기 마련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무리한 벙커샷이 자행되고, 분명 ‘나이스 샷’ 또는 ‘나이스 버디’가 연발할 것 같은 코스인데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연신 ‘Foooooooooore’(뽀~~~~올이요) 뿐이다.

물론 베스트를 경신하지도 못했고, 코스에는 그다지 감동도 없었다. 그러나 우린 여전히 미소를 질질 흘리며 실실 대고 있었다. 지중해의 태양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 지중해의 지기(地氣)는 모든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위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