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건설회사 사장 경기 안좋자 줄줄이 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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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건설경기가 바닥을 기면서 대형건설회사 사장들이 줄줄이 물러나고 있다.

건설업은 공사수주에서 준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특성이 있어 건설회사 대표이사는 '장수 (長壽) 하는 자리' 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지난해말 대형건설사들의 모임인 한국건설사업관리협회 (한건협)가 회원사 26개사를 대상으로 대표이사 임기를 조사한 결과 평균 재임기간은 4년3개월이었고 10년 이상 장수한 사람도 5명이나 됐다.

무려 16년을 맡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IMF 이후 이런 등식이 깨지면서 올 들어서만 한건협 회원사에서 4명중 1명 이상 (27%.7명) 이 '수주부진' 과 '후진양성' 등의 이유로 물러났다.

이 중 4명은 정기주총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사임했다.

이에 따라 평균 재임기간은 2년5개월로 짧아졌고 10년 이상 장수한 사람은 2명으로 줄었다.

한건협 관계자는 "건설회사 사장들은 대부분 두세 차례 재선임되는 게 관례였다" 며 "과거에는 회의를 하면 사장들끼리 서로 오랫동안 친분을 다져 와 화기애애했는데 최근 사람이 많이 바뀐 데다 건설경기마저 나빠져 분위기가 무겁다" 고 말했다.

◇ 수주부진.경영악화가 주원인 = 현대건설 사장 (임기 2년) 을 세번에 걸쳐 6년 동안 맡았던 이내흔 (李來炘.62) 씨는 지난달말 김윤규 (金潤圭.54) 부사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고문으로 물러앉았다.

李고문의 퇴진은 최근 서울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수주실패와 현대건설의 경영악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신임사장은 현대그룹이 추진하는 금강산프로젝트의 대북 (對北) 실무를 총괄하면서 신임을 얻었다는 평가다.

보수적 경영으로 재무구조가 탄탄하기로 소문난 삼환기업 최용근 (崔用根.59) 사장도 지난달 물러났다.

崔사장의 퇴진은 최근 규모가 큰 건설공사 수주에 실패한 게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환기업은 당초 崔전사장과 김명식 (金明植.71) 사장이 공동대표이사를 맡아 쌍두체제로 운영됐으나 이번에 金사장 단일체제가 됐다.

金사장은 지난 62년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한 뒤 36년간 건설업계에만 몸 담아 온 원로. 11년 동안 동아건설 대표이사를 맡았던 유영철 (劉永哲.61) 부회장도 건설경기 악화로 동아그룹이 기우뚱하면서 지난 6월 고문으로 물러앉았다.

劉부회장은 64년 동아건설에 입사해 동아그룹에서만 34년을 일해 온 골수 동아맨. 劉고문의 뒤를 이은 안용 (安.57) 사장은 동아건설이 공모를 통해 영입한 경우. 서울대 토목공학과 출신으로 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래 33년간 건설업에 종사해 왔다.

무려 12년간 벽산건설을 이끌었던 김희근 (金熙瑾.52) 부회장도 지난 8월 대표이사직을 내놓았다.

김희철 (金熙喆) 벽산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金부회장은 벽산그룹을 키운 일등공신이지만 벽산건설이 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 대상이 된 데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벽산건설은 정종득 (丁鍾得.57) 사장 단일체제가 됐고 李부회장은 그룹부회장과 법정관리에 있는 벽산개발의 관리인만 맡게 됐다.

◇ 기타 = 16년 동안 대표이사를 맡았던 롯데건설 이상순 (李商淳.65) 씨가 지난 4월 '후진양성' 등을 이유로 임승남 (林勝男.60) 사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중견건설업체인 풍림산업은 회사 내부사정으로 김병곤 (金秉坤.56) 사장이 지난 2월 고문으로 물러앉고 이필웅 (李弼雄.56)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복귀했다.

LG건설 신승교 (申勝敎.55) 전사장은 연초에 LG돔 사장으로 갔다가 최근 LG돔이 정리된 뒤 LG건설 고문을 맡고 있다.

후임 민수기 (閔修基.55) LG건설 사장은 LG화재해상보험 사장을 역임한 금융맨이다.

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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