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일본방문 설명회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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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여야 정당대표, 3부요인 및 헌법재판소장.선관위원장간의 12일 청와대 오찬은 金대통령의 방일 (訪日) 성과만을 화제로 1시간40분 만에 끝났다.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가 합석함으로써 혹시나 했던 '정치 얘기' 는 철저히 배제됐다.

李총재가 金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높이 평가한 게 '정치적 의미' 를 느낄 정도였다.

청와대측은 金대통령 바로 왼쪽에 李총재 자리를 마련하는 등 배려했다.

○…오찬에 배석했던 김중권 (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은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회동을 마치면서 李총재는 金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좋은 오찬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고 했고 金대통령은 따뜻하게 '바쁘신데 자리를 함께 해줘 고맙다' 고 화답했다" 고 전했다.

○…李총재는 金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긍정평가하면서 "앞으로 여야관계 등 국내문제도 잘 풀어갔으면 좋겠다" 고 말했으나 金대통령이 응답하지 않아 국내 정치문제에 대한 대화는 더이상 없었다.

李총재는 "일본이 문서를 통해 과거문제를 사죄했으나 과거에 보면 일본이 또다시 (망언을) 반복하는 등의 일이 있었는데 주의를 요한다" 고 피력. 李총재는 "일본이 대통령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 것과 대통령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에 대해 대통령은 50년만의 정권교체 결과라고 말했는데 내 생각으로는 (일본측의) 새 정부에 대한 기대 때문인 것 같다" 고 일본측 환대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李총재는 또 "한.일 어업협정을 두고 수산업 종사자들의 우려가 있고 독도 문제를 두고도 국민들이 이해를 못하는 양태가 있는 바, 그러한 분들도 잘 설득했으면 한다" 고 지적. 오찬 시작 직후 金대통령은 간단한 인사말을 한 뒤 李총재 쪽으로 몸을 기울여 한참동안 무언가 말을 건넸고, 李총재도 몸을 기울여 조용히 뭔가 답변.

○…오찬에 앞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참석자들은 가장 늦게 도착한 李총재를 두고 한바탕 농을 주고받는 등 웃음이 거듭. 박준규 (朴浚圭) 국회의장이 충청도 출신인 李총재와 김종필 (金鍾泌) 총리를 가리키며 "충청도는 엉큼해. 그러나 李총재는 아니야" 라고 농을 걸었다.

金총리도 李총재의 팔을 툭치며 "충청도 분이라고 하지만 쭉 다른 곳에 있어서 충청도가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는 것을 보니 느려" 라고 하자 李총재도 따라 웃었다.

분위기가 이쯤되자 청와대 도착 이후 줄곧 긴장한 표정이던 李총재 얼굴도 펴졌다.

충청도의 느린 기질에 관한 농담이 거듭되는 가운데 金총리가 "이제 느리지 않다" 고 하자 국민회의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朴세리.朴찬호를 거명하며 "요즘 충청도 출신 운동선수들이 날리고 있다" 고 거들었다.

이에 李총재는 "과거엔 단거리 선수 중에 충남 출신이 많았다" 고 덧붙였다.

朴의장이 말을 받아 일본 의원들 36명이 우리 의원들과 친선 축구시합을 하러 오는데 여성 의원도 한명 넣기로 했다고 소개하자 趙대행은 우리측 여성 선수로 한영애 (韓英愛) 의원을 즉석 추천.

이어 金총리가 총리공관으로 일본 의원들을 초치, 기운 빠지는 음식으로 접대하겠다는 우스개를 하자 朴의장은 "비아그라를 넣어라" 고 말해 폭소.

○…중국 음식이 나온 원탁에는 金대통령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李총재.박태준 (朴泰俊) 자민련 총재.趙대행.임동원 (林東源) 외교안보수석.金비서실장이, 오른쪽부터 朴의장.윤관 (尹관) 대법원장.金총리.김용준 (金容俊) 헌법재판소장이 앉았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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