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이동국(30·전북 현대)이 2년 만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허정무 축구 대표팀 감독은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파라과이와의 평가전(12일·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나설 23명 명단을 발표했다. 허 감독은 “지금이 발탁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상대 수비 배후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동국이 대표팀에 뽑힌 건 2007년 7월 아시안컵 이후 2년1개월 만이다.
◆발탁 둘러싼 신경전=이동국은 지난달 초 두 경기에서 5골을 작렬했다. 하지만 남아공 답사를 마치고 귀국한 허 감독은 지난달 6일 “주변의 도움으로 주워먹는 골이 많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뽑히지 못하고, 잉글랜드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이유를 잘 생각해 보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일부 팬들이 사기를 꺾는 발언이라며 반발했지만 허 감독은 “작심하고 한 이야기다. 대표팀에 뽑히려면 어떤 걸 고쳐야 할지 분명히 말해 주고 싶었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동국의 부친 이길남씨는 “왜 잘 뛰고 있는 애한테 그런 심한 소리를 했나 섭섭해 밤잠도 설쳤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채찍을 맞은 경주마처럼 더 빨리 내달렸다. “허 감독님 지적처럼 더 노력할 것”이라며 마음을 다스렸고 시위라도 하듯 연속골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달 18일 대구전까지 이동국은 5경기에서 10골을 토해냈다. 허 감독은 이동국 출전 경기 때마다 코칭스태프를 파견하거나 직접 가서 경기력을 면밀히 검토했다. “황선홍도 2002년 이전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 끝맺음을 잘 했다. 이동국에게 쓴소리를 한 것도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동국을 격려하기 시작한 허 감독은 마침내 그를 내려치던 채찍을 거뒀다.
◆대표 발탁은 양날의 검=대표 발탁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다. 이동국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잘될 수도 있지만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대표팀 발탁 소식을 전해준 구단 직원에게 이동국은 “목감기 때문에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7월 초부터 한 달 넘게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 무섭던 기세도 한 풀 꺾였다. 이동국은 최근 2경기에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
8일 한·일 올스타전에 출전하고 9일 대표팀에 소집돼 고작 이틀 남짓 훈련하고 파라과이전이라는 시험대에 서는 것도 부담이다. 지금까지 팬들의 동정표를 받았지만 한 경기를 망치면 또다시 “역시 이동국은 국내용”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여러 선수를 두루 테스트해야 하는 평가전이기에 이동국이 풀타임 출전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코칭스태프 내부 회의에서 “파라과이전이 아니라 좀 더 지켜본 후 장기간 훈련할 수 있는 겨울 합숙 때 이동국을 소집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개진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파라과이전에서 골을 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허 감독은 “아직도 수비는 부족하다”며 만족하지 않고 있다. 박지성을 중심으로 재편된 대표팀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고 현명하게 후배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도 코칭스태프가 주시하고 있다.
한편 허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앞둔 박지성(맨유)을 선수 보호 차원에서 이번에 뽑지 않았다.
이해준 기자
◆파라과이전 국가대표 명단(23명)
▶GK=이운재(수원) 정성룡(성남) 김영광(울산) ▶DF=이정수(교토) 조용형 강민수(이상 제주) 김형일 최효진(이상 포항) 김동진(제니트) 이영표(알힐랄) 오범석(울산) ▶MF= 김정우(성남) 이강진 이승현(이상 부산) 조원희(위건) 오장은 염기훈(이상 울산) 김치우 기성용(이상 서울) ▶FW= 이동국(전북) 조동건(성남) 박주영(AS모나코) 이근호(이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