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렸던 라이언 킹 이동국 태극마크 다시 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사자왕’ 이동국(30·전북 현대)이 2년 만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허정무 축구 대표팀 감독은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파라과이와의 평가전(12일·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나설 23명 명단을 발표했다. 허 감독은 “지금이 발탁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상대 수비 배후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동국이 대표팀에 뽑힌 건 2007년 7월 아시안컵 이후 2년1개월 만이다.

◆발탁 둘러싼 신경전=이동국은 지난달 초 두 경기에서 5골을 작렬했다. 하지만 남아공 답사를 마치고 귀국한 허 감독은 지난달 6일 “주변의 도움으로 주워먹는 골이 많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뽑히지 못하고, 잉글랜드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이유를 잘 생각해 보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일부 팬들이 사기를 꺾는 발언이라며 반발했지만 허 감독은 “작심하고 한 이야기다. 대표팀에 뽑히려면 어떤 걸 고쳐야 할지 분명히 말해 주고 싶었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동국의 부친 이길남씨는 “왜 잘 뛰고 있는 애한테 그런 심한 소리를 했나 섭섭해 밤잠도 설쳤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채찍을 맞은 경주마처럼 더 빨리 내달렸다. “허 감독님 지적처럼 더 노력할 것”이라며 마음을 다스렸고 시위라도 하듯 연속골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달 18일 대구전까지 이동국은 5경기에서 10골을 토해냈다. 허 감독은 이동국 출전 경기 때마다 코칭스태프를 파견하거나 직접 가서 경기력을 면밀히 검토했다. “황선홍도 2002년 이전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 끝맺음을 잘 했다. 이동국에게 쓴소리를 한 것도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동국을 격려하기 시작한 허 감독은 마침내 그를 내려치던 채찍을 거뒀다.

◆대표 발탁은 양날의 검=대표 발탁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다. 이동국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잘될 수도 있지만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대표팀 발탁 소식을 전해준 구단 직원에게 이동국은 “목감기 때문에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7월 초부터 한 달 넘게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 무섭던 기세도 한 풀 꺾였다. 이동국은 최근 2경기에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

8일 한·일 올스타전에 출전하고 9일 대표팀에 소집돼 고작 이틀 남짓 훈련하고 파라과이전이라는 시험대에 서는 것도 부담이다. 지금까지 팬들의 동정표를 받았지만 한 경기를 망치면 또다시 “역시 이동국은 국내용”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여러 선수를 두루 테스트해야 하는 평가전이기에 이동국이 풀타임 출전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코칭스태프 내부 회의에서 “파라과이전이 아니라 좀 더 지켜본 후 장기간 훈련할 수 있는 겨울 합숙 때 이동국을 소집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개진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파라과이전에서 골을 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허 감독은 “아직도 수비는 부족하다”며 만족하지 않고 있다. 박지성을 중심으로 재편된 대표팀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고 현명하게 후배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도 코칭스태프가 주시하고 있다.

한편 허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앞둔 박지성(맨유)을 선수 보호 차원에서 이번에 뽑지 않았다.

이해준 기자

◆파라과이전 국가대표 명단(23명)

▶GK=이운재(수원) 정성룡(성남) 김영광(울산) ▶DF=이정수(교토) 조용형 강민수(이상 제주) 김형일 최효진(이상 포항) 김동진(제니트) 이영표(알힐랄) 오범석(울산) ▶MF= 김정우(성남) 이강진 이승현(이상 부산) 조원희(위건) 오장은 염기훈(이상 울산) 김치우 기성용(이상 서울) ▶FW= 이동국(전북) 조동건(성남) 박주영(AS모나코) 이근호(이와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