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레이날도 한 가곡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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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메조소프라노 수잔 그레이험, 피아노 로제 비뇰 (소니 클래시컬)

당시 1890년부터 1차대전이 발발하던 1914년까지의 24년간은 엄밀히 말해서 19세기 낭만주의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멋진 시대' (La Belle Epoque) 라고 불리던 이 시기는 여성들이 이끌던 살롱을 중심으로 예술지상주의가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살롱은 시인.화가.작곡가.성악가들이 한데 어울려 토론을 벌이면서 새로운 작품을 비공개 초연하면서 새로운 세기를 모색하던 문화적 센터였다.

베네수엘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 레이날도 한 (1875~1947) 은 동시대의 작곡가들인 마스네의 제자이자, 라벨의 동창생이며, 포레의 친구였다.

자신이 뛰어난 성악가이기도 했던 레이날도는 담배를 피워물고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했다.

레이날도 한은 포레를 연상하게 하는 자연스런 멜로디, 전통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프랑스 작곡가다.

1백여곡에 이르는 그의 가곡은 파리의 사교계에서 널리 연주되었다.

그의 가곡에서 특히 여성 취향이 강하게 배어 있는 것은 살롱 문화가 지배하던 19세기말 파리의 시대정신 때문이다.

시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는 시에 충실한 멜로디를 고집했다.

음악을 위해 시를 희생하기 보다 가사의 흐름에 음악을 내맡겼다.

그래서 성악가들이 좋아하는 의도적인 클라이맥스를 설정하지 않아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예술가곡의 참맛을 곱씹게 만든다.

맨해튼 음대를 졸업하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에서 우승한 메조소프라노 수잔 그레이험의 섬세하고 깊이있는 해석은 무명 작곡가 레이날도의 예술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레이날도가 13세때 빅토르 위고의 시에 작곡한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을 비롯해 바로크풍의 가곡 '클로리스에게' '리데' 등 24곡이 수록된 음반. 호젓한 가을밤 문득 그리운 사람이 생각날 때 듣고 싶은 노래들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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