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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방일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맞는 일본측의 태도와 관심은 어느 때보다 정중했고 컸다.

그런 만큼 많은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金대통령에게 보인 일본측의 극진함은 '대한민국 대통령' 에 앞서 '인간 김대중' 에 대한 높은 평가도 작용한 듯하다.

金대통령의 민주화 정치역정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이 깔려 있는 것.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는 8일 밤 만찬에서 "각하께서 극적이고 파란만장한 정치역정 속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글자 그대로 '행동하는 양심' 으로서 숱한 고뇌와 역경을 무한한 용기와 확고한 신념으로 이겨오신 데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金대통령에 대한 표정이나 자세도 깍듯했다.

일본 외무성이 정상회담때 金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단독회담 시간을 줄이고 확대회담의 시간을 늘리자고 우리 외교부에 줄곧 요구한 것도 '오부치 총리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金대통령의 무게' 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홍순영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에 따르면 그러나 우리측은 두 정상의 인간적 관계를 고려,끝까지 단독회담 시간의 확대입장을 고수. 그 결과 우리측은 소기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는게 우리 외교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어업협정의 완전 타결도 두 정상간 직접대화, 정확하게는 만찬석상 귀엣말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것. 金대통령이 "이 만찬이 끝나면 바로 한.일 양국간에 어업협정이 시작된다.

협조를 부탁한다" 고 하자 오부치 총리는 웃는 얼굴로 "타결이 잘될 겁니다" 고 답했다고 한다.

日 언론.국민도 큰관심

○…일본 국민들의 호응도 전과 달리 높았다.

언론의 대대적 보도가 큰 몫을 했는데 일본 NHK - TV는 金대통령의 국회연설 등 주요 일정을 생중계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金대통령의 일본도착 첫날 나타났던 시위대는 자취를 감췄고, 오사카 (大阪) 방문때는 일장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환영인파가 나타났다.

국민들의 이같은 반응은 정치인들의 자세에 그대로 투영됐다는 것. 金대통령의 8일 국회연설에는 레이건 미 대통령 때와 같은, 일본국회 역사상 가장 많은 의원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5백명의 중의원과 2백51명의 참의원중 5백27명의 의원들이 경청했다.

자리가 모자라 수십명의 의원들은 회의장 뒤에 서서 연설을 들었다.

특히 이례적으로 5명의 전직 총리 부인과 일반 의원들의 부인까지도 방청했다.

金대통령의 국회연설후 의회지도자 간담회 자리에는 공산당의원 3명도 나타났다.

○…金대통령의 국회연설은 실제 파급효과가 상당했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 국회연설후 우리측 한일의원연맹 간사인 양정규 (梁正圭.한나라당) 의원이 일본 자민당 법무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는 "대통령의 그 문제에 대한 연설을 듣고 나 스스로 재일동포들의 참정권 문제에 적극성을 갖고 나서기로 했다" 고 말했다고.

○…의전도 이례적이었다.

아키히토 (明仁) 일왕 주최 만찬에는 1백67명이 초청됐는데 이 또한 일왕주최 만찬 초대 최대기록. 金대통령이 도쿄 (東京) 를 떠날 때는 오부치 총리의 부인이 파격적으로 공항까지 나왔다.

오사카 데이코쿠호텔에 머무를 때는 호텔측이 기존의 결혼예약을 모두 취소하기도 했다.

'위성' '미사일' 표현 신경전

○…한.일 양국 외교실무진은 8일의 공동선언이 향후 양국 관계의 '장전 (章典)' 이 될 것을 고려해 표현은 물론 따옴표 (' ) 하나를 놓고도 막바지까지 줄다리기를 벌였고, 양국 정상도 회담에서 대북 정책을 두고 뼈있는 말을 주고받았다.

양국 실무진은 공동선언문을 작성하면서 '오와비 (사죄)' 의 우리말 표현 외에 북한이 지난 8월말 쏴올린 탄도물체를 무엇으로 표기할 것인지를 두고도 팽팽한 신경전을 전개.

일본측은 지난달 24일 한.미.일 외무장관 회담 성명에 '미사일' 이 들어 있는 점과 국내 여론을 들어 '미사일' 로 명기할 것을 고집했고, 한국측은 '인공위성' 을 주장해 논란을 벌이다 결국 관련 문장에 따옴표를 넣어 '미사일' 로 표기키로 낙착.

선언문은 "…양국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엔 안보리 의장이 표명한 우려 및 유감의 뜻을 공유하는 동시에…" 로 돼있는데 우리측은 안보리 의장의 언론발표문이 '로켓에 의해 추진된 물체' 로 돼있기 때문에 '미사일' 을 넣기가 부적절하다고 했지만 일본측은 미사일을 명기하는 대신 완화책으로 '대해' 다음에 쉼표를 넣자고 해 타결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기자회견과 국회연설에서 '인공위성' 이라고 언급, 9일의 일본 각료간담회에서는 표현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으나 누카가 후쿠시로 (額賀福志郎) 방위청장관은 미사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상회담에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두 정상간에 적잖은 인식차가 드러나 다소 어색한 분위기도 연출됐다는 후문. 金대통령은 "서방의 데탕트정책이 총 한방 쏘지 않고 소비에트연방을 해체했다" "북한이 중국.베트남처럼 개방.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며 대북 포용정책을 강조.

이에 대해 오부치 총리는 "그렇지만 북한의 잠수정 침투사건이 있지 않았느냐" 며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지적했고 金대통령은 다시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대응했다" 고 응수했다는 전언이다.

○…金대통령은 이번 방일과 관련해 국회연설을 가장 중요시해 연설문의 퇴고를 거듭했다고 특별수행원인 최상룡 (崔相龍) 고려대교수가 일본 언론과의 회견에서 공개.

崔교수는 "연설문중 '4백년전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 이 들어있는데 金대통령은 일본 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해 침략 장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 고 말했다.

○…일본 문화계 인사와의 간담회에는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간담회에서 한.일 문화교류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 우메사오 다다오 (梅棹忠夫.78) 국립 민족학박물관 고문은 세계적인 비교문명학자. 폭넓은 해외조사를 바탕으로 '문명의 생태사관' 이라는 독특한 세계사 이론을 50년대 후반에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안도 다다오 (安藤忠雄.57) 는 공고 출신으로 대학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건축세계를 구축한 건축가.

오키나와 (沖繩) 의 상업건축물인 페스티벌 (84년) 등 콘크리트 건축설계의 세계적 권위자로 도시계획 설계에도 참가하고 있다.

화가 히라야마 이쿠오 (平山郁夫.68) 문화재보호진흥재단 이사장은 문화재보수 부문의 권위자며, 센 소시쓰 (千宗室.75) 는 일본 다도 (茶道) 계의 대표적 인물로 세계 50개국에 다도를 보급했다.

도쿄 = 이연홍 기자,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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