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손과 머리, 세 가지를 움직여 세 번 말하고 네 번 쓰고 다섯 번 이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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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음식 맛을 얘기할 때 ‘매운 맛’과 관련된 말을 자주 한다.
‘부파라, 라부파, 파부라’. 우리말로 풀자면 ‘매운맛을 개의치 않으며, 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맵지 않을까 걱정이다’라는 뜻이다. 이를 중국어 학습에 적용해보자. 이제는 ‘부파수어, 수어부파,파부수어’, 즉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거리낌 없이 말을 하며, 말하지 않음을 탓하자’라고 주장하고 싶다.

차별을 없애는 것은 쉽지만 편견을 없애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어가 우리말과 완전히 다른 언어라서 학습하기에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자. 최근에는 중국어 학습자들의 ‘냄비 근성’과 같은 조급함이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조금 하고 빨리 오르려는 습성, 한두 마디 익힌 것으로 마치 자신이 많은 것을 공부한 듯 착각하거나 체계적인 학습법을 버리고 시험 위주의 학습법을 따르는 게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제는 ‘냄비’보다 ‘뚝배기’로 그릇을 바꾸자!
뚝배기는 냄비처럼 빨리 끓지 않지만 일단 뜨거워진 것은 쉽게 식지 않는다. 우리의 언어 학습도 오랜 시간 머릿속에 남아서 진한 맛을 낼 수 있는 깊이 있는 단계적인 학습법이 필요하다.

머릿 속에 '배타적 중국어 구역'을
우리는 지금부터 머릿속에 ‘배타적 중국어 구역(ECZ:Exclusive Chinese Zone)’을 세워야 한다. 일정 수준까지의 모든 언어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언어법상의 구역이다. 이곳에선 입을 놀리고(動口), 손을 움직이고(動手), 머리를 써서(動腦) 중국어를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외국어 학습을 위한 세 가지 ‘움직임(動)’의 법칙이다.

외국어를 학습할 때 후각·청각·시각·미각 등의 감각기관은 듣고(聽), 말하고(說), 읽고(讀), 쓰는(寫) 언어의 네 가지 영역에서 절대적인 조건반사 작용을 한다. 이 네 가지 영역을 골고루 익히고 응용해야 외국어 정복의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여기에 ‘5S’ 즉 열심히(strongly), 신속하게(speedy), 변화를 주며(switch), 북돋우며(stimulate), 만족시키며(satisfy) 하는 학습법을 권한다.

크게 열심히 읽고, 외울 때까지 신속하게 읽으며, 외웠으면 책을 덮고 변화를 주어 말하고, 그리고 다시 격려를 하며 써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신에게 만족을 하며 공부를 계속한다. 이 땅에서 현대중국어 교육이 시작된 지 어언 50여 년이 흘렀다. 조선시대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어로 말을 하는 것은 결국 ‘소통’을 위함이었다. 즉 언어의 주요 기능은 상호 작용과 의사소통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서 영어와 더불어 중국어 역시 의사소통의 필수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중국어 학습 모델은 주로 시설 투자나 외형에만 신경을 쓰는 하드웨어적 교육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어 학습에 성공한 사례는 모두 창의적인 모델 개발이나 학습기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는 이러한 유형의 소프트웨어 바이러스는 우리나라 중국어 시장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가 살기 위한 생존 백신 기능도 함께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언어든 배운 것을 제대로 써 먹을 수 있는 교재와 교수법의 개발, 그리고 이를 지도할 교사 양성이 우선돼야 한다. 여기에 중국어 교육과정 학습과 평가를 하나의 맥락에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즉 기존의 글말 위주의 평가 방법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언어 구사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실용성과 기능성 중심으로 가르치고 평가해야 한다.

중국어 가르치는 능력도 검증 해야
중국어 교사들도 중국어로 중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TCTC:Teaching Chinese Through Chinese)을 길러야 한다. 물론 중국어를 잘 하는 교사보다는 학생들이 중국어를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교사가 더 필요하다. 중국어로 수업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수업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중국어 수업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다.

중국어 교사 인증제 역시 절실하다. 즉 중국어 교수법, 중국어 교육학, 중국 언어학 같은 관련 지식을 평가하는 ‘Teaching Knowledge Test in Chinese (TKTC)’와 실제 현장에서의 중국어 수업 진행 능력 평가인 ‘Teaching Practice Test in Chinese(TKTC)’와 같은 형태의 인증제가 필요하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투자하고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우리의 외국어 교육 현실 속에서, 큰 공장을 짓지 않고도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경쟁력 있는 방법은 오로지 ‘소통’ 위주의 교육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외국어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백신이다.

"말을 하자, 두려워 말고 말을 하자"
‘푸웡(富翁)’이라는 단어와 ‘푸웡(負翁)’이라는 단어는 발음도 같고 성조도 같다. 하지만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전자는 원래 ‘부유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후자는 20세기 말 홍콩에서 생겨난 말로서, 원래 백만장자였지만 갑자기 늘어난 부채 때문에 하루아침에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위에광주(月光族)’라는 말이 있다.

달빛 아래 거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매달(月) 번 돈을 다 써버리는(光)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홍수처럼 생겨나는 새로운 신조어는 그때그때 익혀두지 않으면 무의미한 낱글자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유의미한 문장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외국어 학습의 목적이라면 요사이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참여하는 ‘해병대 체험’과 같은 살벌한(?) 분위기와 절제된 행동으로 중국어를 학습해야 한다. 4주 훈련이 아니라 4년쯤 긴장 속에서 익혀야만 비로소 경쟁력 있는 달인이 될 수 있다.

어느 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말하기에 35%, 듣기에 40%, 읽기에 16%, 쓰기에 9%의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75%의 시간을 듣기·말하기에 할애하고 있다. 중국어 단어와 문장은 열정을 갖고 빠르게 신바람 나는 새로운 학습법으로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입과 손과 머리로 세 번 말하고, 네 번 쓰고, 다섯 번 이해하는 식으로 학습해야 한다. 또한 세 번 듣고, 네 번 말하고, 다섯 번 읽고 써야 한다.

현대중국어 학습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그리고 멀리 올라 높이 멀리 바라볼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외친다.
‘말을 하자, 두려워 말고 말을 하자!’
여러분, 자유(加油: 힘 내세요)!


김현철 교수는
연세대에서 중국 어법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년째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 BCT위원회 위원장과 중국어문학연구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중국어 어법 연구방법론』『중국어학의 이해』『중국언어학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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