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 중국 병법으로 풀어본 북핵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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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탄두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나라!’ ‘전직 수상이 “우리는 일주일이면 핵무기를 만든다”고 공언하는 나라!’ 바로 이 나라 일본의 총리 아소 다로는 지난 6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일본) 국민의 핵무장 요구가 고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이라기보다는 “삼면이 핵으로 둘러싸인 핵 샌드위치 나라”로 명명되는 시기를 맞고 있는가 보다.
북한은 일찍이 1960년대 구(舊)소련으로부터 ‘연구용’이라는 미명하에 원자로를 제공받은 후 핵무기 개발을 결심하고선 파키스탄의 지원 등에 힘입어 핵개발을 지속해왔다.
북핵이 세상에 알려진 건 1989년 세계평화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미국이 인공위성을 통해 북한 영변지역에서 핵개발 의혹 시설물을 포착하면서부터다. 그 후 미국은 이 사실을 국제문제화 하면서 ‘제네바 합의’ 도출, ‘6자회담’ 개최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여타 6자회담 참가국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허탈과 분개의 입맛만 다시게 되었다.
입만 열면 어울리지 않는 ‘강성대국’을 외쳐대는 북한은 지금 ”진(秦)나라가 장의(張儀)의 연횡책(連橫策)으로 6국을 격파하고 중국통일을 이룬 것과 같다”며 한,미,중 등 5개국에 이긴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6자 게임에서 미국은 “적의 의도를 미리 간파, 이를 봉쇄하는 것이 우선이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 차선이다(上兵伐謀 其次伐交)“라는 손자병법을 사용했고, 중국은 노자(老子)의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제압한다(以柔制剛)”는 유화책을 사용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전장에서는 속임수도 꺼리지 말라(戰陣之閒 不厭詐僞)”는 한비자(韓非子)의 전법과 한신(韓信)의 ‘배수진(背水陣)’ 전법, 그 위에 현대적 전술 개념인 클라우제비츠의 배합전술(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배합)까지 구사했다.
또한 6자 게임에 임하는 각국의 자세를 보면, 여타 5개국 대표들은 외교적 신사였던 데 반해 북한 대표들은 패하면 죽어야 하는 전사였다.
그렇다면 게임 결과는 자명하지 않겠는가. 북한측이 핵실험 성공은 물론, 보너스로 테러지원국 해제, BDA은행 자산동결 해제, 각종 경제지원 획득 등 얻을 것은 다 얻고, 잃거나 포기한 것은 하나도 없는 완승을 거두었다. 중,미 양국은 “계략을 세울 때는 주도면밀 해야 한다(凡謀之道 周密爲寶)”는 태공병법(六韜)을 간과하면서 북한의 본심과 전략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해 그들에게 시간과 물자만 헌납하고 만 셈이다. 이 대목에서 최근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북한은 시스템은 미쳤으나 협상가들은 가장 뛰어나고 집요한 사람들이다”라고 언급한 사실이 빛을 발한다. 한국은 당초부터 게임의 주도권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전략도 발언권도 없는 듯 북한 눈치나 보면서 미.중 양국에 구걸이나 한 꼴이니 전략상 중국 병법을 인용할 명분조차 빈약한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억지로 한국의 전략을 자리매김해 본다면 “남의 힘을 빌어 적을 물리친다(借刀殺人)”는 삼십육계 중 승전계(勝戰計)를 흉내냈다고 할까?
북한이 핵개발을 성공시킨 동인(動因)으로는 첫째, 북한이 김일성 때부터 핵무기 개발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작정하고 전쟁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추진해온 점, 둘째, 미,중 양국이 북한의 진의 파악에 실패한 채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저지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 셋째,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한국이 북핵을 결사적으로 막아야 했으나 그 순진한 햇볕 정책으로 인해 북한에 엄청난 경제원조를 하고도 대북 저자세를 보이면서 한미공조에 엇박자를 연출한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면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 해가는 현 국면을 맞아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우리 대한민국은 국제공조를 통한 북핵 저지에 노력은 하되, 그 보다도 이제는 북핵에 대항할 강력한 자위권 확보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선결과제요 현실적 대안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우리는 핵 잠재력 개발을 포함한 EMP탄 개발 가속화 등 새로운 차원의 고감도 국방력 증강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쓰는데 맞서 우리도 연미통중(聯美通中)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시도해 한국주도의 통일이 중국에 하등의 안보적 부담이 없음을 이해시키는 전향적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향후 대북 협상 시에는 귀곡자(鬼谷子) 병법의 “가난한 자에게는 이익으로, 용감한 자에게는 과단성으로, 허물 있는 자에게는 예리한 지적으로 대처하라”는 대목을 깊이 통찰하여 서두르지 말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북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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